음악적 문법을 다루는 또 하나의 연출가 음악감독은 음악적인 문법을 다루는 또 하나의 연출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스로 드라마를 잘 이해하는 음악감독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하지만 드라마에만 연출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음악에도 드라마적인 문법 바탕을 통해 표현해야 하는 연출이 필요합니다. 음악감독은 작곡가가 정형화된 틀과 음악적인 문법과 어법을 넣어 만든 곡을 정확히 구사해 배우들에게 전달하고 관객들이 드라마를 보고 감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음악감독은 여러 크리에이터, 스탭들하고 교류하고 화합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연출과 드라마적인 상호교환이 필요하고, 안무자도 굉장히 중요하죠. 음향감독님은 특히 파트너로 중요해요. 또 누구보다 배우들을 잘 끌어가야 하는 사람도 음악감독입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피아니스트 1997년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는 작품의 피아니스트를 하게 됐어요. 친구가 못하게 되어서 하게 된 것인데 그 당시 삼성영상사업에서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우선 큰 규모에 깜짝 놀랐죠. 당시 배우 류정한씨가 처음으로 뮤지컬로 데뷔하는 작품이었고, 전 반주자로 데뷔했는데, 그 작품을 보면서 학교에서 클래식만 했던 것과는 참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2001년에 <오페라의 유령>으로 두 번째 뮤지컬을 접하게 됐는데, 결국 내가 이쪽 일을 해야 행복하겠구나 생각했어요. 관객과 배우, 오케스트라의 호흡을 받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돼서 입니다. 그 동안 피아니스트로서 몇 번 경험을 했을 뿐인데 그 뒤부터 정말 많은 분들이 음악감독으로 불러 주시더군요.






6살부터 피아노를 집중적으로 오래 쳤어요. 피아노를 잘 치던 누나의 영향도 있어서 어려서부터 음악가가 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성가대에 참여하는 등 음악을 접해왔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언제부터인가는 가사가 있는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됐어요. 가사가 없는 음악적인 언어는 여러 가지 상상력을 만들어주지만 가사가 있는 음악들은 상상력을 저하시킨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클래식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음악 감독이 되었어요(웃음). 더군다나 가사가 있는 음악이 있는 음악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지요. 지금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가사 리딩에 굉장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웃음).



트리스탄과 이졸데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란 작품이 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이 음악을 라디오에서 처음 듣고 너무 좋아서 새벽까지 잠을 못 잘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그런 울렁증은 있어요. 좋은 작품을 만나면 좋아서 대본과 악보를 껴안고 침대에서 자기도 해요. 트리스탄과 이졸데란 작품의 문법은 고전이나 낭만도 아니에요. 약간 조금 더 근대쪽으로 갔다고 해야할까. 각각 진행되다 사랑할 때는 소리가 결합되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라고 말합니다. 정말 힘이 들 때 이 음악을 들으면 세상이 다시 보이더군요.



전 너무 불 같은 사람이에요. 음악에 관해 섬세하고 예민해 지는 경향이 나이가 들수록 작아지는 게 아니라 더 심화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들이) 음정이 맞지 않게 하면 나도 모르게 표정에 변화가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기분이 상하기 때문에 노래를 못하거나, 악보를 잘 못 보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우들은 아마 저를 어려워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런 배우들을 포기 하진 않는 경향이 있거든요. 될 때까지 시키는 스타일이에요. 배우는 사람들은 괴로워 하지만 나중에 고마워 하는 배우들도 있는 것 같아요.





단점은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말은 계획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얼굴 표정은 싫은 게 가려지지가 않아요.
음악적으로 취약한 점도 많이 있어요. 인생을 살아오면서 굉장히 다양한 음악을 들어왔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장르는 자신이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 없는 음악의 음악감독을 꽤 많이 한 것 같아요. 전 클래식컬 한 음악을 잘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아닌 것을 훨씬 더 많이 했어요. <올슉업>도 락앤롤이었고, <스핏파이어그릴>도 포크였고요.

강점이라고 하면, 다행히도 저의 부족한 점을 커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중 음악쪽에도 에이스에 속하는 세션 분들이 항상 제 작품에 도움을 주시거든요. 제가 부족한 어떤 맛이란 걸 확실하게 보여주세요.
성격상 강점이라면 맡은 일을 정말 열심히 한다는 것. 연습 땐 연출할 때 꼭 함께 지켜보고, 안무할 때도 계속 보면서 음악적으로 방해되는 걸 코멘트 하해요. 미친듯이 올인하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입니다.



투나잇과 샤인 저에겐 첫사랑과 같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투나잇’이라는 노래요. 제트파와 샤크파, 마리아와 토니가 모두 노래를 부르며 화려하게 끝을 내는 음악이거든요. 그 음악을 정말, 끝나면 할렐루야 아멘이 나오게 하는 힘이 있죠. 또 하나는 <스핏파이어그릴>의 ‘샤인’이라는 노래요. 당시 조정은 양의 목소리와 정말 잘 어울렸죠. 배우 목소리, 음악적인 문법, 드라마와의 조합이 모두 들어맞는 곡이었어요.



<로맨스 로맨스>처럼 어려운 작품은 정말 처음이었어요. 1막은 클래식컬한데 2막은 완전히 팝적인 작품이거든요. 연주자를 구하기도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클래식과 팝을 모두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지 않거든요. 연주자들이 손들고 못 하겠다고 하는데 결국 잡아서, 정말 오랜 시간 연습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서는 감당하기 힘든 작품이 아닌가 했는데, 버젓이 공연을 해서 완성했을 때 결국은 해냈구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유명한 사람이고 싶진 않고 사람들이 이미 사랑하고 있는 작품의 음악감독이기 싶지도 않습니다. 밝은 곳에서 한줄기 빛은 강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어두운 곳에선 미미한 빛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저를 필요로 하고 제가 행복하게 일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더라도 내가 너무 사랑하는 작품, 이불 속에서 대본과 음악을 가슴에 품으면서 행복해 할만한 작품들을 계속 끝까지 하고 싶어요. 변희석 음악 감독은 이런 색깔의 작품을 굉장히 잘 하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이 직업은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음악감독을 꿈 꾼다면 음악을 다양하게 듣고, 작품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능력들을 많이 키웠으면 좋겠어요. 음악감독은 기본적으로 행복한 직업이에요. 음악과 드라마가 퍼즐처럼 딱딱 들어맞는 게 느껴지면 참 행복하거든요.
뮤지컬은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거든요. 드라마가 있는 음악이잖아요. 그런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겁니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무대를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좋은 작품도 있고, 나쁜 작품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잘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작품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싫어할 자유는 있지만, 모두 다 정답은 아닐 때가 많거든요. 관객과 무대가 서로 긍정적인 작용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좋은 스텝들이 많이 나와줘서 관객들에게 좋은 작품을 제공해야겠죠.



정리 :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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