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의 음악성, 음악이 가진 예술성을 존중하여 음악을 무대화하는 사람입니다. 음악이 어떤 쓰임새로 가야 하는지, 방향성을 정하는 사람이죠. 무대 위에서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한지, 배우의 수, 연습, 편곡 등을 가늠해야 되요. 당연히 다른 파트의 스태프들과 합리적으로 소통해야 하고요.

사실 ‘음악 슈퍼바이저’라고 붙이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공연에 따라 음악감독은 바뀌어도 되죠. 제가 참여한 <맨 오브 라만차>를 예로 들자면, 과거 제가 음악감독으로서 해석을 했지만 다음 공연에는 다른 음악감독이 담당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슈퍼바이저는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 1차 크리에이브 팀에 속해서 이 음악이 왜 이 장면에서 이렇게 쓰여지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이지요. 시즌별로 작품을 다르게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처음 만들었을 때의 의도, 중심은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우리나라의 현 시스템과 인식과는 다르지만, 이런 것들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때 몇몇 사촌들이 끼가 있어서 할머니 생신 때 뮤지컬을 쓰고 노래나 의상도 우리끼리 만들어서 공연을 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고적대, 중고등학생 때는 합창단 활동을 했고, 교회에서 팀을 짜서 찬양도 했는데 당시 멤버로 유희열, 재즈드러머 오종대 도 있었죠.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왔던 것 같아요. 대입 전후기 실패 하고 , 어머니가 서울예대에 실용음악과가 있으니 거기 붙으면 작곡 전공으로 재수를 시켜준다고 하셨거든요. 두 달간 화성악이며, 처음으로 작곡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대학에 합격하고 보니 커리큘럼이 방송음악, 뮤지컬개론, CF음악 제작법 등 하고 싶었던 것이 다 있더라고요. 운이 좋았던 건 학교 선배들이 절 예쁘게 봐 주셔서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에요. 당시 노래방이 처음 국내에 들어왔을 때라 각국의 노래 수 천곡을 편곡했고, 여러 콘서트에서 피아노 세션으로도 참여했어요. 또 CF나 드라마 음악도 하게 되고요.

우연히 1992년에 뮤지컬 <코러스라인>의 세션을 한 적이 있는데 규격화 되어 있는 광고음악, 반복되는 편곡 법칙들과는 달리, 뮤지컬 음악은 전혀 새로웠어요. 당시 뮤지컬계가 너무 열악했고 계속 할 엄두가 안 나서 물러났었는데 결혼 후 본격적으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꼭 소리를 질러야만 카리스마가 있는 게 아니라, 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그게 보여진다고 생각해요. 음악과 작품에 대한 확신, 내 음악적인 것에 대한 확신이요. 연주자들과 배우들은 제 거울이거든요. 제가 하는 만큼 연주자들에게서 음악이 나와요.

그래서 연주자들에게도 최선의 상황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의자가 삐걱거린다든지 조명등이 깜빡거린다든지 하는 사소한 것들까지 다 맞춰줘요. 이런 것들 때문에 연주 못하겠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 팀 연주자들이 절 더 무섭다고 해요. “다 맞춰줬는데 왜 못해?”하니까.(웃음) 50분 연습하고 10분 쉰다든가 정확한 시간에 시작해서 정확한 시간에 연습을 끝내려고도 노력하고요.



성실하다고 많이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요. 스스로 채찍질하는 것도 있겠지만, 주변 환경이 많이 도와주죠. 큰 아이가 중학생, 작은 아이가 초등학생이라 둘 덕분에 전날 녹음이 새벽에 끝나도 아침 7시엔 일어나야 하거든요. 아침 회의에 절대 늦지 않죠.

또 하나는 어머니에요.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니까 “네가 온다고 아픈 애가 안 아픈 것도 아니고, 일하면서 애들 핑계 대지 말아라” 하시는 분이세요. 밖에 있을 땐 철저히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많이 도와주시죠. 어렸을 때 TV 볼 때도 빨래를 개거나 마늘을 까거나 뭐라도 같이 해야 했는데, 그게 지금 작업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악보를 보면서 동시에 무대 그림도 봐야 하거든요. 그런 성실함이나 부지런함을 어머니께 배운 것 같아요.

단점으론, 저도 예술가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거에요. 어떤 기능인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들 땐 약간 서글프거든요. 반복되는 생활에서 벗어나 며칠이고 훌쩍 떠나서 곡을 쓰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러질 못하죠. 가정이 있는 생활인이기도 하고, 벌려진 공연들도 많고요. 혼자 꿍꿍거리는 건 있지만, 아이들이 적어도 내 손을 벗어날 수 있을 때가 되면 곡 쓸 거에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떠도는 젊은이들 중 한 명이 예수의 아들이라는 상황에서 작품이 출발하고, 그런 인간적인 사고에서 예수의 번뇌와 고민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우리나라에서 너무 성경적으로만 왜곡, 해석된 것 같아 많이 안타까워요.
너무 즐거워서 미칠 것 같은 공연은 <프로듀서스>였고, 가장 애정 있게 만든 작품은 <몽유도원도>였어요. <내 마음의 풍금>은 제게 여러 다른 기분 좋은 일들도 많이 안겨 준 작품이지요. 지난 시즌에는 제 딸이 여러 아이들 중 한 명으로 출연도 했어요.



‘이룰 수 없는 꿈’. 최고의 넘버를 꼽는 게 제일 힘든 질문이지만, <맨 오브 라만차>의 ‘Impossible Dream’은 언제나 제게 힘을 줘요.



외국에서 공연한 <명성황후>. 해외에는 연주자 연합이 구성되어 있어서 그곳의 연주자들과만 공연을 할 수 있어요. <명성황후> 공연을 갔을 때 그쪽 연주자들이 절 어떻게 봤겠어요.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서 정통 클래식 전공자도 아닌, 키 작은 여자 마에스트로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초반엔 주눅이 많이 들었고, 심지어 공연 전날 지휘봉도 부러졌거든요.
그런데 어디선가 지휘자가 들어가서 10초 안에 모든 게 결정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최대한 단아하고 꼿꼿하게 하려고 했죠. ‘내가 한 만큼 해 줄거야’ 스스로 다짐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마지막 공연 때는 모든 연주자들이 다 일어나서 저를 위해 박수를 쳐 줬어요. 어떤 한 단체에서는 지휘 공부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보여줘도 되겠냐고 물어도 오고요.

당시 오케스트라 악장이 “우리는 연주자이고, 네가 이 작품에 대해서 누구보다 가장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너에게 잘 보이고 좋은 연주를 들려줘야 하는 게 우리의 의무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또 그들은 자신들의 경쟁력을 위해 두, 세 개의 악기를 배우고 다룰 줄 알아야 해요. 그런 상황들을 접하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배우게 되죠.




제가 작곡한 곡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언제나 있어요. <내 마음의 풍금>을 끝내고 나서 왜 또 작품을 쓰고 싶지 않겠어요. 늘 존경하고 좋아했던 앤드류 로이드 웨버나 스티븐 손드하임과 같은 작곡가들처럼 제대로 된 한국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요.

또 후배 양성도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금방 식어버리는 트랜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큼 전문 인력이 풍부해야 하거든요. 현재 공연 연주자층이 굉장히 얇은데, 잘하는 연주자들의 참여, 그런 의식이 증폭되었으면 해요. 또 편곡자, 작곡자, 음악 슈퍼바이저, 전문 리허설 피아니스트, 오디션 반주자 등과 이와 연관성이 있는 음향 쪽까지 이젠 공연 소프트웨어가 더욱 길러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적인 소양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일단 체력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어요. 공연 때 오케스트라 앞에서 지휘하는 모습 등만 보고 환상을 키우시는 분들이 간혹 계신데 그것이 전부가 결코 아닙니다. 음악감독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지치지 않는 체력, 에너지가 있어야 해요. 또 작품을 볼 때 더욱 참여자의 입장에서 보려는 노력, 현장에 뛰어들어 작업해 보려는 의지와 적극성을 갖춰야 합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반듯이 그것과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정리: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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