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끝나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 ‘극작’은 끝이 없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작업이에요. 작가가 쓴 글은 배우를 통해서 보여지고, 배우와 연출이 달라질 때마다 달라지는 고정된 것이 없는 작업물 이잖아요. 극작가는 열려있는 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운명을 가진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사랑한 연극 중, 고등학교 시절에 정말 많은 연극을 봤어요. 학교 매점에 쌓여있던 할인쿠폰을 들고 거의 매일같이 공연을 보러 다녔었는데, ‘연극이 좋다’는 마음이 연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인 ‘배우’를 꿈꾸는 마음으로 이어진 거죠. 부모님께서 원하셨던 학부를 전공한 후에, 다시 연극원 1기로 연기과에 진학했어요.

무대에 서야 하는 3학년이 되면서부터 ‘이 쪽 일이 나와 맞지 않는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다들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데, 저는 계속 뒤에 서 있으려고 하고, 재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황지우 선생님께서 “넌 대본을 쓰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극작과 수업을 청강하면서 대본작업의 재미를 알았지요. 학부에서 연기를 전공했으니까, 대학원도 연계를 해서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연기 전공으로 유학을 가게 됐어요. 그런데 또, 무대에 서야 하는 시점부터 재미가 없어지는 거에요. 전공을 뮤지컬극작전공으로 바꾸고 난 후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게 공부를 마쳤어요. 연극 ‘박제 갈매기’를 시작으로 뮤지컬 <첫사랑><내 마음의 풍금><사춘기><미녀는 괴로워>등 작품을 이어가고 있어요.



주인공, 마음이 아파야 시작되는 이야기 가짜의 아픔을 가진 이야기, 아픔이 없는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아요. <사춘기>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인 느낌을 많이 담은 작품이에요. 캐릭터의 변형은 있었지만, 등장인물 한 명, 한 명 마다 제 모습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30대 이상의 성숙한 사랑이거나, 너무 순수한 진짜 사랑을 담은 고등학생, 십 대의 사랑 이야기를 좋아해요.


배우들과의 작업, 연출을 통해서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하기 전에, 많은 조율을 거쳐요. 그리고 연습이 시작되면 연출이 원하는 방향으로, 최대치의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따르는 편 이에요. 배우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도 가급적이면 연출을 통해서 전달해요. 연출, 작가가 동시에 배우들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면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도 있고,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거든요. 연출과 의견이 다를 때에도 부딪히려고 하기 보다는‘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많이 따르려고 하는 편이에요.



가슴이 아프도록 절실한 제가 가슴이 아픈, 그런 작품이어야 해요. 가벼운 사랑이야기 보다는 목숨 거는 사랑을 좋아해요. 로맨틱 코미디에서 오해가 생겼다가 풀어지는 그런 이야기를 선호하지 않아요. <내 마음의 풍금> 작업을 했을 때에는 “양선생님이 떠나는 게 아니라 죽는 설정이 어떤가”를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다들 만류해서 그 설정을 넣을 수는 없었지만요. (웃음) 절실한, 죽을 만큼 사랑한 그런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절실함 아까 말한 것처럼, 제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절실함’이에요. <내 마음의 풍금>속 주인공, 홍연이의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도‘절실함’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공연이 올라가는 매 순간 공연이 시작될 때 희열을 느껴요. 이런저런 이유로 공연이 엎어지고, 미완성으로 남는 공연들이 정말 많거든요. 공연화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공연이 올라가는 매 순간이 기적으로 다가오고, 정말 감사하게 느껴져요.

<사춘기> 라는 작품은 마이크도 처음 차보는 신인배우들과 함께 시작했던 공연이라 공연 전까지 정말 막막했어요. ‘이게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우여곡절이 많을수록 큰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정말 큰 희열을 맛보게 해준 작품이었어요. 좌절을 느꼈을 때는 애정을 가지고 준비한 작품이 공연화 되지 못할 때, 중간에 작품이 엎어질 때죠. 공연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해는 해요. 하지만 그럴 때 창작자로서 좌절을 느껴요.



연극 <아마데우스> 생애 최고의 작품으로 연극 <아마데우스>를 꼽고 싶어요. 절실한 느낌, 절망스러운 와중에도 살아있는 유머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목숨을 걸 정도의 무엇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은 숨막히게 다가올 정도였어요.



사람들의 이름은 잘 기억하는 편인데, 얼굴은 잘 기억하지 못하거든요. <내 마음의 풍금> 연습을 할 때였는데요, 정말 잘생긴 사람이 와서 인사를 하는 거에요. 처음 본 사람이었는데 정말 잘 생겼더라고요. 속으로 ‘저 얼굴로 배우를 해도 괜찮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이지훈 배우였던 거에요. 2년 넘게 <내 마음의 풍금> 남자 주인공을 맡았던 사람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던 거죠. ‘ㄹ’ 발음이 안 되는 배우를 위해서 모든 대사를 ‘ㄹ’발음이 없는 내용으로 교체한 적도 있었고, 어린이 극을 할 때는 배우가 무대에 서지 못해서 연출자가 그 역할을 소화한 적도 있었어요.




어린이 극 극단 사다리에서 <베토벤 이야기> 같은 어린이 극을 쓴 적이 있었는데요, 앞으로도 어린이 극을 더 쓰고 싶어요. 조금 더 자유롭고, 솔직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바로 어린이 극의 매력이에요. 가사에 “하늘을 날고 싶은 사람은 손 들어봐”하면 아이들은 번쩍번쩍 손을 들어요. 숨김이 없는, 순수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기본기를 다지는 게 중요해요.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고전, 기본 드라마, 작법에 관한 기본을 가지고, 글을 열심히 써야지요. 협업은 하되, 정치적으로 타협하지 말고 정직했으면 좋겠어요. 작가는 한 작품을 쓰기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쏟아 부어서 오랜 시간 작업을 하지만, 그 노력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다는 것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정직하게 자신의 글로 진검 승부를 해야 한다는 것, 기본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극작가는 앞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기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들을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정리: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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