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네요(웃음). 안무가란 감정이나 호흡을 움직임으로, 몸으로 만드는 사람 같아요.



대학에선 발레를 전공했고, 뮤지컬은 대학교 4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처음 접하게 됐어요. 처음만 아르바이트의 개념이었지 그 이후로는 바로 직업이 됐죠.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들어간 순간부터 7~8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져있었어요. 발레리나가 갑자기 뮤지컬을 한다니까 집에선 달가워하지 않았죠.

일단은 잘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웃음). 그러면 또 엄청 열심히 하게 되고. 잠을 못 자도 상관없을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한 작품 한 작품 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좋고, 새로운 세상 같았어요. 무조건 좋았어요. 딱 한 가지 안 좋았던 건 돈이에요(웃음). 집에서 약간 벌레 취급을 받는 다고 해야 하나?(웃음). 항상 칭찬받는 딸이었는데, 그런 대접은 처음 받아봤거든요. 그래도 그 이상으로 뮤지컬이 좋았고, 철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냥 빠져서, 어떤 에너지에 끌려서 했던 것 같아요.

근데 배우를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히더라고요. 결혼에 대한 압박감,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감, 그리고 주인공을 맡게 되면서부터는 노래에 대한 압박감.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힌 거죠. 그래서 과감하게 영국으로 떠났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일단 본고장에 가서 공부를 해보기로 한 거죠.

영국에서는 극장무용(Theater dance)을 공부했어요. 정말 많이 배웠죠. 그 때부터 고생이 시작된 것 같아요(웃음). 그 전에는 철없이 좋아서 뮤지컬을 했다면, 그 때부터는 프로로서의 의식과 책임감을 갖게 된 거죠.



일단 제 안무에는 패턴이 없는 편이에요. 그리고 뜨겁게 춤추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원초적이고 뜨거운 에너지를 좋아하거든요.





저도 나이를 먹으면서 계속 달라지고 진화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장단점도 계속 바뀌어가고 있어요. 제가 처음 안무를 했을 때는 너무 숨쉴 틈이 없다는, 여백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을 잘 못 본 것 같아요. 지금은 여백이 좀 생긴 것 같고요.
또 제가 맺고 끊는 게 정확하다 보니까 안무에 군더더기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할 때는 저와 성향이 다른 조안무들과 함께 하면서 제 단점을 보완하려고 하죠.



최고의 작품을 하나 뽑기보다, 작품마다 최고로 생각하는 장면이 하나씩 있는 것 같아요. <뷰티풀 게임>의 경우 축구장면을 6개월 이상 공들여 만들었고, 관객들도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영웅>의 경우 추격장면을 많이들 좋아해주셨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장면은 게이샤들이 춤추는 장면이에요. 그 장면은 보면 볼수록 예뻐서 빠져들고, 질리지 않아요. <모차르트!>에서는 주교가 모차르트, 모차르트 아빠와 얘기하다가 악보를 던지면서 쫓아내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 나오는 하인들의 움직임이 좋아요. <쌍화별곡>은 오프닝 장면이 좋고요. 작품마다 죽이는 장면들이 있어요(웃음). 그런 장면들은 마음 잡고 공을 엄청 들여서 만들죠.



에피소드를 느낄 만큼 여유롭게 작업한 적이 없는 것 같네요(웃음).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배우들이 제 옛날 얘기를 많이 해요. 30대 초반에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하드락 카페> 할 때 제가 너무 무서웠대요. 그 때는 배우들이 살만 조금 쪄도 무대가 기운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디테일을 중요시했거든요.
그 외에는 그냥 하루하루가 에피소드인 것 같아요. 혼자 안무를 생각할 때는 괴롭기도 한데, 같이 연습할 때는 즐거워요. 배우들도 열심히 잘 해주니까. 놀이터에서처럼 작업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매번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정답 안에서 안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매 작품마다, 환경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바뀌거든요. 뮤지컬 안무가는 춤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게 많아서 백 가지 천 가지를 생각해야 되거든요. 그 때마다 뭐가 중요한지를 잘 알아채야 하는 것 같아요.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조화에요. 예전엔 안무에만 신경을 썼다면, 지금은 음악, 무대, 조명 등 다른 많은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안무를 만드는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옛날보다는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일단은 리허설 기간이 많이 길어졌죠. 예전에는 소품을 무대에서 처음 만져보는 경우도 많았거든요(웃음). 근데 지금은 거의 연습 첫날부터 공연에서처럼 소품을 쓸 수가 있어요. 이런 것들이 뮤지컬의 수준 엄청 높여줬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스텝의 입장에서는 리허설 기간이 아직도 부족해요. 더 길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뮤지컬을 계속 사랑하는 것? 제가 이 작업을 계속 했던 것이 뮤지컬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해서였기 때문인데, 이 일을 한지 20년이 넘다 보니 약간은 타성에 젖게 되는 것 같아요. 옛날에 비해 열정이 많이 없어지지 않았나, 기술로서 접하고 있지는 않나,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많이 해요.

사실 예전부터 가져온 목표는 있었어요. 우리 스텝들이 만든 우리 작품을 브로드웨이에 파는 것이 제 꿈이거든요. 브로드웨이에서 3년이고 4년이고 롱런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요. 분명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 꿈을 향해 가려면 열정이 있어야 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질풍노도의 시기에요(웃음).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모든 시간을 뮤지컬에만 쏟지는 않았나, 너무 지독하게 사랑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앞으로는 지독한 사랑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랑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밀당의 기술을 좀 익혀서(웃음). 일에도 밀당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던 것 같아요. 이것도 다 성숙해지는 과정이겠죠. 선배들이 열정을 갖고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렇게 열정을 갖고 안무가, 연출가로서 일하는 10~20년 후의 모습을 그리면서 재정비를 하고 있어요.





뮤지컬이 되게 어려워요. 종합예술이라서 여러 분야를 두루 공부해야 되거든요. 춤만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춤도 장르별로 세대별로 다양한 춤을 배워야 하고. 안무가가 그런 것을 처음 접하기엔 배우를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배우를 8~9년 했잖아요. 그러면서 다양한 장르의 춤과 안무가를 만났고, 연기를 알게 됐고, 음악을 알게 됐고,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해 흡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안무가가 되고 싶다면 일단 배우가 돼서 많은 안무가들과 작업해보고, 직접 춤도 춰보고, 연기도 해보고, 배우가 가져야 할 것들을 몸소 겪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자기에게 부족한 것들을 더 익히고.

제가 논문을 쓸 때 어느 박사 논문을 번역해서 봤는데, 거기 뮤지컬 안무가가 되는 조건이 정확하게 명시돼 있더라고요. 첫째가 순수무용을 전공하라는 거에요. 특히 발레를 전공하면 좋다고 나와있어요. 모든 기본 테크닉이 다 거기 있거든요. 두 번째가 배우생활을 5~10년 하고, 그 다음에 자기 분야에서 개인적인 춤 활동을 한 사람이 뮤지컬 안무가로 적합하다고 나와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적합한 거죠. 잘난 게 아니라, 조건이 맞았던 거죠. 저도 만약 배우생활을 그렇게 오래 안 했다면, 영국에서 공부를 안 했다면 되게 힘들었을 거에요.

또 가능하다면 외국유학을 권유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본고장에 가서 공부하는 좋고, 또 뮤지컬의 정서와 호흡이 대부분 외국의 것이거든요. 꼭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외국에서 삶의 패턴, 생활의 호흡을 직접 느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