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연극은 너무 많은 사실을 알고 가면 김이 빠진다. 결정적인 장면이나 결말을 이야기 해버리면 차가운 시선을 받기 일쑤. 하지만 예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장르가 있으니, 오페라는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오페라가 너무 귀족적이고 어렵다는 생각은 편견이지만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가면 티켓 값이 생각나기 쉬운 장르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페라를 보기로 결심했다면 해당 작품에 대해 약간의 시간 투자는 현명한 선택이라 할만하다. 오페라를 즐기고 싶다면 오는 5월 공연을 갖는 <아이다>와 <투란도트>에 관심을 가져보자. 오페라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 중에서도 꼽히는 걸작들이니 그 감동에 대한 의심은 살짝 접어도 될 듯.  줄거리를 기본으로 작품 속 음악과 명장면, 작품 탄생의 배경을 한번 살펴보면 초보라 하더라도 충분히 오페라의 향기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가 다가가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진다면 18~19세기 유럽 사람들에게 오페라는 지금의 영화나 뮤지컬처럼 대중적인 오락거리였음을 상기하는 것도 친근해지는 한 방법일듯.

Aida  아이다
베르디의 <아이다>라는 오페라 제목을 처음 듣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그만큼 오페라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 받으며 초연 이후 지금까지 추앙 받는 베르디의 진정한 명작이다. 재미있는 건 이 작품 제의를 베르디가 두 번이나 거절했다는 거다. 이미 최고 대가로서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다시 창작열을 불태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이탈리아 오페라 사상 최고의 명작이자 베르디 본인의 대표작이 됐다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이다를 거절했던 베르디
<아이다>는 이집트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한 카이로 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으로 위촉된 공연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베르디에게 <아이다> 제의가 갔을 때, 그는 이미 유럽 악단의 최고 대가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베르디는 <아이다>를 연속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다른 음악가에 의해 <아이다>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었다는 것.
하지만 다시 창작열을 불태우기로 결심하는데, 은퇴 뒤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던 58세의 그의 마음을 돌려 놓은 건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만든 세 장짜리 간단한 줄거리였다.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이 대가 가슴 어딘가를 쳤음이 분명하다. 결국 베르디는 당시 오페라 사상 최고의 개런티로 계약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걸작이 될 것임을 예감한 그는 유럽내 판권도 가지는 수완도 발휘했다.
<아이다>를 위해 안토니오 기슬란초니가 다시 대본을 쓰고 엄청난 재정이 뒷받침됐지만 이 작품은 마침 발발한 보불전쟁 때문에 카이로 오페라하우스 개관 시기에 맞추지 못하고, 다음 시즌이 되서야 올라갔다.
그리고 두 달 후에 올려진 밀라노에서의 유럽 초연을 시작으로, 이 오페라는 단숨에 세계 오페라 극장을 정복했다. 이미 은퇴한 노장이 다시 돌아와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항상 찬사만 들어온 건 아니다. <아이다>가 올라간 1870년대에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이 선보이고 있었다. <맥베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등이 실험성이 강한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아이다>는 시대 착오적인 작품이라고 비판 받기도 했다. 사실 그 시대 분위기에 비해 <아이다>가 보수적인 성격을 띈 건 맞다. 하지만 베르디가 그 사실을 몰랐을까. 그는 그런 걸 잘 알고도 일부로 보수적으로 만들었다. 아마 그는 19세기를 마감하는 최고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남기고 싶었을 것이고, 정통 보수적인 점은 <아이다>의 매력이니 베르디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명장면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오페라 <아이다>의 주요 바탕은 세 젊은이의 치명적인 삼각관계다. 두 여자 주인공인 아이다(소프라노)와 암네리스(메조 소프라노)가 남자 주인공 라다메스(테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가 이 오페라의 기둥 줄거리. 여기서 주인공 아이다는 에티오피아 공주였지만 이집트에 잡혀와 암네리스 공주의 몸종이 된다는 설정은 두 여주인공의 극단적인 신분차이를 드러내 흥미를 더해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아이다가 부르는 ‘이기고 돌아오라’ ‘오 나의 조국’ 라다메스가 부르는 ‘청아한 아이다’ 등일 거다. 또한 그 유명한 개선장면도 명장면. 하지만 이것만을 떠올린다면 진정 <아이다>를 즐긴다고 할 수 없다. 이 작품은 세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삼각관계를 다룬 만큼 여자 주인공들의 심리를 드러낸 2중창들도 감상에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특히 아이다와 암네리스가가 벌이는 2막 1장의 이중창,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벌이는 3막의 이중창, 암네리스와 라다메스가 부르는 4막 1장의 이중창은 각 인물들 간의 갈등을 최고조로 노출한 장면들로 인물들의 심리가 폭발하는 명장면들이다.

 

명장면 2막 1장의 이중창(아이다, 암네리스)
라다메스가 전쟁터로 나간 후, 암네리스와 아이다 둘만이 방에 남는다. 두 여주인공의 극적인 2중창이 시작된다. 라다메스는 아이다의 진심을 보려고 “라다메스가 전사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에 절망하는 아이다의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 모든걸 알아낸 공주는 자신도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이다는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진 고귀한 여인이다. 미천한 나에겐 오직 사랑밖에 살아갈 희망이 없으니 제발 나의 사랑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공주도 “나도 너 못지 않게 그를 사랑한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이때 무대뒤에서 개선한 군대가 입성하는 ‘개선행진곡’이 들려온다. 공주는 “나는 옥좌에서, 너는 흙 바닥에 엎드려 그를 맞이하자”고 말하고 아이다는 절규한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가 라이벌이 되어 이중창을 부르는 명곡으로 주인공들의 심리가 절묘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Turandot 투란도트
오페라 <투란도트>는 베르디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 최고의 작곡가인 자코모 푸치니의 최후의 작품이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투란도트>는 푸치니 음악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오페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푸치니에게는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등 인기 있는 오페라들이 많지만 예술적인 면에서 <투란도트>는 한 단계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끝내 완성하지 못한 푸치니 생애 마지막 작품
푸치니가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뜬 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푸치니는 <투란도트> 작곡 도중 후두암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작품 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작곡에 매달렸다. 이는 오랜친구이자 예술적 동지인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기대와 이미 선불을 지급한 스칼라 극장의 압력 때문일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치니는 <투란도트>를 완성하지 못한 채 치료를 받기 위해 벨기에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토스카니니는 그때까지 완성된 악보만을 가지고 공연준비를 강행하지만 연습 도중 푸치니는 결국 세상을 떠난다. 이로써 공연 준비는 중단되지만 <투란도트>에 유난히 애정을 가진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젊은 작곡가 프란 알파노에게 작곡을 완성하게 한다.
결국 1926년 4월 라 스칼라 극장에서 <투란도트> 초연이 열렸다. 개막 전부터 푸치니 최고의 걸작이라는 기대감과 갈릴레오 키니의 스텍터클한 무대, 화려한 의상은 그 당시 세간의 화제였다. 공연이 시작되고 3막 노예 류가 죽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몰입했다. 류가 죽자 토스카니니는 “푸치니 선생이 작곡하신 부분은 여기까지”라고 무대뒤로 돌아가버렸고, 객석은 감동으로 들썩였다고 한다. 다음날부터 알파노가 작업한 부분까지 연주되었고 오늘날까지 최고의 오페라로 사랑받고 있다.

얼음같은 공주의 사랑을 얻어라
이 작품의 캐릭터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주인공 투란도트(드라마틱 소프라노)다. 투란도트는 푸치니 오페라에서 보기 드문 드라마틱 소프라노 배역이다. 그녀는 힘차고 권위 있으며 비정한데다 잔인한 최고 권력자다. 복수를 위해 자신과 결혼하려는 남자를 모두 죽이는 그녀를 변하게 하는 사람은 여자 노비 류(리릭 소프라노)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목숨을 내 놓는 그녀의 희생정신에 투란도트의 감성이 깨어난다. 남자주인공 칼라프(테너)는 멸망한 나라의 왕자로 투란도트와 결혼해 다시 일어서는 게 목적. 물론 투란도트를 보고 한눈에 반하지만 그의 해피엔딩은 류의 희생을 딛고 일어선다는 건 어쩔 수 없다. 냉혹한 여인과 사랑을 가득 품은 여인, 그 사이에 남자 주인공. <투란도트>도 <아이다>처럼 삼각관계를 기초한 이야기다.

<투란도트>는 비극적인 요소, 서정적인 요소, 희극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것으로도 유명하다. 즉 주인공 칼라프와 투란도트는 극적이고 영웅적이며 류는 감성적인 부분을 메운다. 핑, 퐁, 팡이란 세 대신은 이름처럼 희극적이고 엽기적인 부분을 맡는다. 특히 2막에서는 이들 핑, 퐁, 팡 셋만이 등장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 또한 이 작품의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장대한 비극 속에 감성과 풍자적인 희극을 넣은 과감성. 이게 <투란도트>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명장면 3막 1장 중 아리아(류)
류는 최후의 아리아 ‘얼음 같은 공주님의 마음도’를 부른다. “얼음 같은 공주님의 마음도 뜨거운 불길에 녹아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분과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 죽음을 택합니다”라고 노래하고 병사의 칼을 재빨리 뽑아 자신의 가슴에 찌른다. 이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장면이 푸치니가 마지막으로 썼던 대목이다.

오페라 작곡의 거장 베르디와 푸치니의 두 작품을 살아있는 거장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국내 관객에게 선보이는 <아이다>와 <투란도트>는 어떨까. 우선 색체의 마술사라 불리는 피치의 웅장한 무대와 화려한 의상, 철학적 고민이 무대에 녹아있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2006년 이탈리아 마체라타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작품을 그대로 한국에서 재연한다. 특히 <아이다>와 <투란도트>라는 만만치 않은 걸작을 릴레이 형식으로 무대에 올릴 예정이어서 기대감은 높아져만 간다.


지난해 국내에서 <라 트라비아타>로 독특하고 천재적인 연출을 선보인 피치와 그의 수제자이자 협력 연출 마시모 가스파론이 공동작업을 한다. <아이다> 연출은 마시모 가스파론이, <투란도트>는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맡는다. 이들은 항상 작품의 무대와 의상, 소품을 모두 직접 디자인해 작품에 색을 더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피치는 한국 의상에도 관심이 많은데 지난 <리날도> 공연 때 구입해 간 한복 100여벌을 마체라타 페스티벌의 작품 <노르마> 무대의상으로 사용해 우리 의상을 전 세계에 알린 바 있다.




두 대작의 무대를 하루 만에 바꾸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아이다>와 <투란도트>처럼 장대한 스케일의 무대라면 더욱 그럴 것. 릴레이 공연이 국내에서도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연출가들의 각기 다른 무대를 짧은 시간에 전환하는 게 불가능 하다는 이유로 무산되곤 했다.
이번 공연은 처음부터 레파토리 시스템을 위한 맞춤 제작으로 이를 가능케했다. 무대의 기본적인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천장에 매달아 둔 세트와 대도구, 소품, 조명 등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열 시간 미만에 무대를 전환하는 것. 계단식의 거대한 무대가 공통분모로 작용해 장대함을 도드라지게 한다. 캐릭터들의 지위도 계단 무대에서 드러난다. <아이다>와 <투란토트>의 두 여주인공이 계단에서 위치가 상반된 것을 비교하면 재미있을 것.


 


2006년 마체라타 페스티벌에 출품됐던 의상과 소품이 그대로 국내무대에서 재연될 예정이다.
무대의상과 소품, 가발 등은 배와 비행기로 이탈리아에서 공수되는데 컨테이너 5개 분량나 된다. 이 중 피치와 마시모가 직접 디자인한 300여벌 이상의 의상이 무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아이다>는 백색과 황금색, 블랙이 주요 컬러고 <투란도트>는 적색, 청색, 보라색이 주요한 색이다. 모두 신분과 성격을 암시하는 색이기도 하다. 특히 <투란토트>에서 공주가 중국식 의상이 아닌 서양 드레스를 입는다는 점도 재미있다.  화려함의 극치를 선보이지만 세렴됨도 갖춘 패션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감상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글: 송지혜 기자(인터파크ENT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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