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딘버러에 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어 주는 도시의 광경일 것입니다. 한쪽에 탁 트인 바다, 그 옆에는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깎아지르는 듯한 높이의 광활한 언덕이 스코틀랜드의 정취가 가득한 고딕 양식의 건물들과 어울려 한 눈에 들어오거든요. 조금은 서늘한 북부의 바람을 타고 갈매기가 끼룩이며 하늘을 나는 모습은, 이곳이 바닷가인지, 번화한 도시 한 가운데이지, 아니면 녹음이 푸르른 들판인지를 잠시 헛갈리게 만듭니다.

에딘버러 페스티벌 기간에는 이러한 광경에 총천연색의 활기가, 예전에 왕족들만 거닐었다는 로열 마일을 중심으로 입혀집니다. 바로 저마다의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예술가들 때문이지요.



특히나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의 경우 오전 10시부터 자정에 가깝도록 공연이 이어지는데, 수 많은 작품 속에서 본국의 작품을 알리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이곳 로열 마일에서 맛보기 공연을 벌여 관객들의 발길을 잡는 것이니까요.

에딘버러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가들은 크게 두 부류입니다. 하나는 참여한 단체에서 직접 나와 공연을 홍보하는 그룹과, 또 하나는, 어제는 아니었어도 오늘만은 에딘버러의 예술가를 자처한 떠돌이 아티스트들이 그들이지요.

드라마, 신체극, 코미디,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참여하는 축제 만큼, 거리 역시 노래와 기발한 행위예술로 가득찹니다.

로열 마일 곳곳에는 간이 거리 공연을 위한 부스가 마련되어 있는데, 이 무대 역시 스케줄이 다 짜여져 있습니다. 아카펠라 그룹 ‘The Oxford Gargoyles’들이군요. 지난해 이곳에서도 전석 매진한 공연이라며 자기네들의 자랑이 대단했었습니다. 무엇보다 활기차게 노래 부르는 모습이 참 생그럽죠?

떠들썩한 외침 보다 더 큰 파장을 기대하는 걸까요? 아예 바닥에 누워 손에 든 전단지만 높이 들 뿐 입니다. 관심 있으면 한 장 빼 가세요.

여기 누운 사람 또 있군요. 멀쩡하게 차려 입은 한 신사가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누워 있고, 그의 수트 케이스는 열린 채 널부러져 있습니다. 한 여자가 바삐 돈을 세면서 하는 말, “이 사람이 어떻게 깨어나는지 궁금하시면 저희 쇼에 오세요!”

“오늘 밖에 기회가 없어요! 마지막 무대가 당신을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난히 마지막을 강조하던 힙합 가이즈들.

노란 우비를 입은 이들은 일본의 코믹 넌버벌 퍼포먼스 팀이었습니다. 공연명이 ‘Shut up, Play’인데다가, 공연 중간에 “당신은 휴대폰을 끌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라고 푯말을 써 드니, 정말로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군요.

원 맨 프로덕션, 거리 곳곳이 곧 실제 무대가 되는 또 다른 이들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올 프린지 거리 공연의 테마는 ‘차력’이던가요? 창으로 저글링을 한다던지, 수 많은 못 위에 눕는 등, 아찔한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네요.

그런데 왼쪽 사람이 한 수 위인 것 같죠?

화려한 말재주로 관객들의 혼을 쏙 빼 놓는 것도 일품입니다. 위의 사람은 무려 본 묘미가 시작 되기 전 15분 간을 외쳐대는데, 작년까지 10년이 넘게 세계 최고의 서커스단의 수석 무용수로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딱 2번 무대에 서 봤다는 농담이라든지, 사다리 한 칸에 올라가 놓고서는 대단히 위대한 일을 한 것처럼 떠벌리는 등 가히 지루하지 않은 워밍업에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이 몰렸습니다.

이들 거리 예술가들의 퍼포먼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관객’과의 소통입니다. 모든 공연에서 예술가들은 “앞으로 더 가까이, 가까이 오세요”를 가장 많이 이야기 합니다. 또 많은 관객들이 수시로 특별 게스트로 초빙되어 함께 공연을 이끌어 가는데, 관객과 무대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 완성되는 즐겁고 유쾌한 그림인 것이죠.

이 아이는 커다랗고 제법 무거운 이 큰 손바닥으로 광대 여인이 시킬 때마다 박수를 아주 크게 쳐야 했어요.

이들의 무대는 단순한 쇼로 그치지 않습니다. 수 많은 공연을 다 맛 볼 수 없는 관객들에게는 탁월한 선택을 위한, 언제나 새로운 작품을 찾는 공연 관계자들에게는 한 눈에 여러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자생하는 아트마켓이 바로 ‘거리’이니까요. 그리고 기꺼이 빈 깡통을 울리는 동전들로 제법 짭짭할 수입도 올릴 수 있는, 누구도 손해 볼 것 없는 경제 활동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신기한 곳 아닌가요?


글/사진: 에딘버러=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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