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여성이 배우로서 무대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대략 1660년 이후이다. 이전의 고대 그리스극에서부터 중국, 일본을 포함한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여자 역할을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고 대신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이후에 여성들이 무대에 설 수 있게 되면서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웃음의 모티브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크로스 드레싱(Cross-dressing)의 모습은 1900년대 이후 심화되어 극장을 포함한 문학, 오페라, TV, 음악 등의 다양한 문화영역에서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에도 이러한 크로스 드레싱의 모습은 여러 부문에서 볼 수 있는데, 뮤지컬의 경우 <록키 호러 쇼>, <헤어스프레이>같은 작품들이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크로스 드레싱은 동성애의 모습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라 카지 오 폴, La Cage aux Folles>은 대부분의 남자 배우들이 여성스러운 복장과 함께 동성애자로 출연함으로써 위의 특수성들을 유쾌하게 경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뮤지컬이다.

올해 초 메니에 쵸콜릿 팩토리(Menier Chocolate Factory)에서 리바이벌되었던 이번 뮤지컬은 앞서 말한 것처럼 크로스 드레싱을 이용한, 최초로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게이 뮤지컬이다. 작품이 초연(1983년)되었던 당시에는 에이즈(AIDS)가 사회적 이슈로 크게 대두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유쾌한 게이 커플의 가족이야기는 어쩌면 당시에는 굉장히 도발적이었을 것 같다.

프랑스 작가 장 프와레(Jean Poiret)의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우리말로 <새장속의 광대>라고 해석되어지기도 했는데,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1,761번의 공연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었고, 또 1978년 연극을 기반으로 프랑스 영화로도 제작되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후에 1996년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더 버드케이지, The Birdcage>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었는데, 웨스트엔드의 경우 1986년 런던 팰러디엄 극장에서의 뮤지컬이 초연된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리바이벌되면서 작품의 우수성과 특수성이 다시 한번 새롭게 발견될 수 있었다.

늙은 게이 가수의 정체성 엿보기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게이역할 배우들의 유쾌한 해프닝을 통해 관객들이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더불어 재미와 감동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때문에 쵸콜릿 팩토리에서 성공한 이후, 공연은 이제 웨스트엔드의 플레이 하우스 극장(Playhouse Theatre)에 입성하며 평론가들을 포함한 관객들의 또 한 번의 뜨거운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공연의 스토리는 이렇다. 조지(Georges)와 앨빈(Albin)은 여장 게이 쇼 전문의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는 늙은 게이 커플이면서, 여성스러운 앨빈은 클럽의 쇼 <라 카지 오 폴>의 주연 가수 자자(Zaza)로 출연하고 있다. 그들은 조지가 젊었을 때 시빌(Sybil)이라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장-미셀(Jean-Michel)을 함께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들이 결혼하겠다며 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집으로 초대하면서 갈등이 생긴다. 여자의 아버지가 지극히 보수적인 전통과 가족 윤리를 중요시하는 정당의 당수였던 것. 결국은 그 동안 엄마의 역할로 아들 장 미셀을 키웠던 앨빈이 가족간의 모임에서 엄마로서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서 스토리는 심화된다. 결국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의 결혼은 허락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이를 통해 사회가 가진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을 읽고 과연 동성애가 옳고 그름의 문제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관객들에게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메임, Mame>, <헬로, 돌리, Hello, Dolly!>등을 작곡한 베테랑 제리 허먼의 풍부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진 곡들이 때로는 힘차게, 때로는 멜랑콜리하게 늙은 게이 가수의 인생을 반추하게 만드는 데 있다. 또한 하비 파이어스틴(Harvey Fierstein)의 위트있는 대본은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작품의 성공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더불어 원색의 조명들과 커튼을 뒤로하고 마치 물랑 루즈를 연상케하는, 섹시한 여성의상으로 차려입은 게이 댄서들의 카바레 쇼와 함께 사회자 조지의 관객들에게 던지는 시시껄렁한 농담도 시종일관 즐겁다. 또한 클럽의 무대와 백스테이지를 오고 가는 무대 디자인과 함께 무대 앞 관객들이 클럽의 손님 역할로 앉을 수 있게 만든 카바레 좌석들은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재미를 제공한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1막의 마지막 부분인데, 주인공 앨빈이 자신이 가족간 만나는 자리에 엄마로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듣고, 그 와중에 나이트 클럽의 무대에서 슬퍼하면서도 결연하게 부르는 솔로 넘버 ‘아이 엠 왓 아이 엠(I Am What I Am)’이다. 중년의 게이 가수 앨빈은 이 곡을 통해서 자신이 동성애자로서 왜 소외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역설한다. 곡은 결국 동성애자냐 아니냐는 성적 정체성의 흑백논리가 인간의 존엄성의 측면에서 의미없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는 간접적으로 게이부부를 통해 전통적인 시각에서의 가족이라는 의미를 더욱 확장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편할 수 밖에 없는 편견과 소외의 모습들이 작품의 제목과 연관된, 새장에서 춤을 추는 게이 댄서들의 장면을 통해 함축적으로 보여진다.

주인공 앨빈 역의 더글라스 호지


주인공 앨빈 역의 더글라스 호지와 여장 게이 댄서들
특히 이번 공연의 커다란 성공은 주인공 앨빈 역의 더글라스 호지(Douglas Hodge)의 열연에 힘입은 바 크다. 쵸콜릿 팩토리 공연에서는 앨빈 역의 더글라스 호지와 함께, 조지 역엔 <레미제라블>의 자베르로 유명한 필립 콰스트(Philip Quast)가 주연하였으나, 이번 플레이하우스에서는 데니스 로슨(Denis Lawson)이 조지 역을 맡았다.

더글라스 호지의 앨빈은 남성의 몸에 여성성을 가진 인물로 표현되는데, 배우에게 요구하는 부분이 매우 클 수 밖에 없는 쉽지 않은 역할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배우라면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일 것 같다. 작은 손짓이나 얼굴 표정 하나에도 여성적인 모습이 묻어나는 그의 연기는 그가 얼마나 배역 연구에 공을 들였는지를 추측케 한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그에게 기립박수를 치며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준 것도 그의 노력을 관객들이 알아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웠던 작품의 게이에 대한 일방적 시선

하지만 배우들의 게이 연기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 관객들의 동성애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더욱 부추길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에 캐릭터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나이트 클럽의 댄서들과 앨빈과 조지의 집사인 제이콥의 모습도 게이들의 모습을 고정관념화시키기 십상이며, 또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게이 커플에 비해 나머지 게이 무용수들이 스토리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분리되어 보이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게이들의 모습과 라이프 스타일이 코미디에 초점을 맞추면서 작품의 플롯이 치밀하지 못한 채, 동성애에 대한 사회 문화적 문제점을 진지하게 다루는데 실패해 오락적 요소만 강조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Song on the Sand’나 ‘I Am What I Am’같은 의미있는 곡들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동성애자들을 단지 볼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의미없는 뮤지컬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 미국, 영국 등의 서구사회에서는 동성애가 더 이상의 커다란 논쟁거리는 아니지만, <라 카지 오 폴>과 같은 공연을 통해서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관객들이 사회적 소수자들의 모습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플레이DB www.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