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막장드라마다. 남자는 사기를 치고, 여자는 10억 때문에 50대 남성과 결혼한다. 겨우 10살짜리 딸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며 차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막장드라마에 욕보다 ‘울컥’하는 눈물이 맺힌다. 생각 없이 웃다가도 어느새 씁쓸해지는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이내 곧 무대에서 슬픈 현실을 맞닥뜨린다. 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의 삶을 요구하는, 아니 요구 받는 젊은이들의 외침을 목격한다. 연극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2010 봄 작가 겨울 무대 최우수작으로 선정돼 앙코르 무대를 선보였다.

유난히도 말썽을 부렸던 세 친구는 고등학교 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 만난다. 공부 잘 하고, 말 잘 들어 선생님의 몽둥이 한 번 맞아본 적 없던 ‘착한’동창들은 그 곳에 올 수가 없다. 세상에서도 잘나가는 그들은 돈을 버느라 바쁘시기 때문. 편의점 알바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원재, 룸살롱 웨이터인 길현, 사채 빚에 신체포기 각서까지 쓴 영기, 삶에 허덕이는 이들만이 그 자리를 지킨다. 이윽고 그들은 힘을 합쳐 보험사기를 벌이기로 작정한다. 보험사기는 그들에게 사기도 아니다. 돈 없고, 억울한 그들이 돈 있는 분들의 양주 한 병 값 한 번 달라고 하는 것이 뭐 그리 큰 잘 못이겠는가. 연극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그들의 삶을 잔잔하게 하지만 대놓고 관객들에게 대면시킨다.

분명 작품의 캐릭터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나 아이러니하게 관객들은 그들을 연민한다. 극 중 사기가 저질러 질 즈음에는 꼭 플래시 백 효과로 무대 저편에서 그들의 과거가 펼쳐진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보이는 그들의 과거는 눈물 날만큼 불행하다. C형간염 걸린 어머니의 치료비가 필요하고, 5만 원 팁을 위해 눈물을 삼켜야 하고, 사채업자의 요구에 칼을 들어보기도 한다. 한 무대에서 비루한 삶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목격한 관객들은 주인공의 도덕성이 사기라는 죄 앞에 넘어갈 때도 모른 척해주는 것이 가능해진다. 씁쓸함과 무거움이 마음을 지배할지라도 말이다.

그 무엇보다 이들의 나이가 아직 서른이라는 사실은 더욱 가슴을 치게 만든다. 극 중 길현이 보험 사기의 결정판으로 치매연기를 하기에 이를 때는 눈뜨고 보기가 민망하다. 얼굴에 똥칠을 하고, 온 무대를 거칠게 뛰어다니는 나이 삼십의 젊은이라니.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민망하고 씁쓸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관객은 작품을 통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고뇌를 처절하게 공유한다. 이들을 이렇게 절망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이들의 대사처럼 ‘이 세상에서 이들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하는 빚의 올가미가 젊은이들을 묶어버린다. 88만 원 세대니, 학자금 대출 빚 때문이니 젊은이들의 한탄이 뉴스마다 터져 나온다. 이러한 현실을 작품은 명백하게 반영한다. 목숨과 돈을 바꿔버리는 세상, 단 번에 보험금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는 주인공들이 신선하지 못하다. 이 작품은 신랄하게 어쩌면 너무도 무난하게 최근 세상 풍경을 제대로 무대 위에 옮겨 놓는다.

2010 신춘문예당선작가라는 수식어답게 작품은 세련되고 젊다. 메시지의 무거움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작품의 경쾌한 음향 효과와 깔끔한 장면 전환은 작품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온전하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캐릭터를 잘 살려내는 세 배우 민동환, 이형훈, 이호영 뿐 아니라 적재적소에 힘 있게 등장하는 멀티맨 김나미, 홍우진의 연기력 역시 주인공 못지않게 빛난다. 멀티맨들이 나오는 작품들은 대게 무게의 추를 코미디로 옮겨 놓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중심까지도 잘 견딘다.

이 작품은 대사의 힘도 강하다. 1986년 생 작가가 던지는 단어는 절대 가볍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단어의 힘이 명확하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허나 극이 끝날 때까지 연극 제목 ‘아직 끝나지 않았다’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일까. 작품은 제목을 통해 또 한 번 다양한 메시지를 꺼낸다. 임나진 작가와 김태형 연출가는 프레스콜 당시 인터뷰를 통해 “보험사기 이후 친구들의 삶이 어떻게 될 지 상상해 보라. 그러한 의미에서 제목을 붙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말 극의 막이 내린 이후, 돈을 얻게 된 그들은 결심하고 약속한대로 희망과 행복을 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제목을 통한 신기한 방법으로 관객들의 머릿속 열린 결말을 심어둔다.

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