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매력을 지닌 카르멘
‘하자리안 가브리엘라’

잘츠브루크 오페라 페스티벌 기행 중 오페라의 종착역(개인적으로)인 비제의 오페라 < 카르멘 >을 평일에 본다는 것이 적잖은 중압감을 가지고 관람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카르멘’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던 11시 40분이었다. 인터미션 포함 4시간을 달려간 오페라 < 카르멘 >은 아리아와 이중창, 합창을 불문하고 박수가 나왔던 희귀한 오페라가 되어 버렸다. 뭐 그만큼 좋았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약간은 민망할 정도로 아무 때나 쳐버리는 박수가 더 성의없이 느껴졌던 공연이었다.

잘츠브루크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보여 주었던 다른 오페라와는 달리 무대 밖에서의 등장이나 한국 아이들의 합창단이 함께 공연한다거나 카르멘이 객석까지 나와 관객들과 함께 아리아 ‘하바네라’를 불렀으며, 전주곡에서 돈 호세가 사형당하는 암시적 장면 등을 삽입하는 등의 파격적인 연출이 눈에 들어왔다.

오페라 < 카르멘 >을 알리는 전주곡이 시작되고 나른하고 이글거리는 태양의 스페인이 펼쳐진다. 카르멘의 성격이나 방식은 1막의 두 노래를 통해 소개된다. 그 노래가 ‘하바네라 : 사랑은 변덕스런 새(Habanera: L'amour est un oiseau rebelle)’와 ‘세기딜랴 : 세빌리아의 성벽 가에 있는(Seguidilla: Pres des ramparts de Seville)’의 두 곡이다. 잠깐 살펴보면 하바네라의 가사는 이렇다.

'사랑은 들에 사는 새, 아무도 길들일 수 없어요. 거절하기로 마음 먹으면 아무리 해도 안 되지요. 협박을 해도 안되고, 꾀어도 안 되지요. 말을 잘하거나 말없는 분 중에서 말없는 분을 택할래요. 아무 말을 안해도 저를 즐겁게 하니까요.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은 집시 아이, 제멋대로지요. 당신이 싫다 해도 나는 좋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 때는 조심해요! 당신이 잡았다고 생각한 새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 버릴테니까요. 사랑이 멀리 있으면 기다려요. 그러면 생각치 않았을 때에 찾아올 테니까요. 당신 주변 어디서나 갑자기, 갑자기 사랑이 왔다가는 가고 또 찾아 올 테니까요. 당신이 붙잡았다고 생각할 때는 도망칠 것이고 벗어나려 하면 당신을 꼭 움켜잡을 거예요.'
카르멘은 사랑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자기가 하고 싶은 사랑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는 여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속박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의 기술을 구사하는 여자임을 알 수 있다. 또 한 곡의 가사를 보자. 세기딜랴는 카르멘이 담배공장에서 한 여인과 싸우다가 잡혀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돈 호세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세비야의 성벽 부근, 내 친구 릴리아스 파스티아의 선술집에서 세기딜랴를 춤추고, 만자니야를 마실 거예요. 그래요. 그러나 혼자서는 지루해요. 진정한 즐거움은 두 사람이 나누어 갖는 것, 그래서 동무로 삼기 위해 연인과 함께 가겠어요. 내 애인, 그는 사라졌어요. 난 어제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는데 쉽사리 위로받는 내 불쌍한 가슴. 내 가슴은 공기처럼 자유로와요. 난 한 다스의 구혼자가 있었지만 내 마음에들지 않았었죠. 이제 주말이 되었어요. 누가 나를 사랑하길 원하나요? 난 그 사람을 사랑하겠어요. 누가 내 가슴을 원하나요? 가져가 주세요. 당신은 알맞은 때에 오셨어요. 전 시간이 없어요. 새로운 연인과 세비야 성벽 부근 내 친구 릴리아스, 파스티아의 선술집에서 세기딜랴를 춤추고 만자니야를 마셔야 하니까요’
아무나 옆에 있는 사람에게 주겠다는 무책임한 사랑의 태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카르멘의 유혹이 가슴 속을 심하게 간지르면서 못견디게 마음을 잡아 끌고 있는 듯 하다.

카르멘의 이 두노래는 카르멘이 살아가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감옥에 끌려 가게 된 위기에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가벼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집시는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는 도시를 불살라 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속박을 싫어한다. 더구나 감옥은. 카르멘의 매력은 어떤 운명이 앞에 닥치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평정일 것이다. 결국 4막에서 알프레도에게 찔림을 당하면서도 죽음을 초연히 맞이했던 태연함은 카르멘의 평정일 것이다.

이 오페라는 1845년에 바표된 메이메의 소설을 비제가 오페라도 만든 것이다. 메리메의 거칠거칠한 대로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지는 글을 썼으며 비제의 음악도 스페인의 이국풍을 살리면서 인물들의 운명을 꽤나 가까이 느끼게 하는 데 성공을 했다.

2막은 파스티아의 술집. 카르멘이 이 술집에서 춤을 추고, 손님 접대도 한다. 고객들은 주로 군인들. 카르멘을 감옥으로 보내려 했던 장교 즈니가도 술을 마시고 있다. 투우사 에스카미요의 카르멘에 대한 관심을 뒤로 하고 카르멘은 돈 호세를 기다린다. 밀수꾼은 카르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카르멘. 카르멘은 돈 호세를 환영하는 춤을 추고 나팔소리를 들은 돈 호세는 탈영을 걱정한다. 카르멘의 원하는 사랑방식으로 일은 진행되고 밀수꾼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돈 호세는 카르멘에게 몽환적인 사랑노래 ‘꽃노래’를 부른다. 이 아름다운 노래가 끝나면 언제나 박수가 나온다. 그러나 카르멘의 다음 대사는 “아뇨,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요!”이다. 사랑한다면 시시하게 굴지 말고 내 살길인 밀수꾼과 함께 하는 거야라고 가차없이 들이 댄다. 돈 호세는 카르멘이 제시하는 냉철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이다.

3막은 산 속. 밀수꾼 일행이 짐을 지고 산을 넘는다. 카르멘은 카드점을 치고 죽음의 점괘가 나온다. 카르멘이 먼저 죽고 그 다음에는 그이도 죽고. 카르멘은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투우사 에스카미요는 카르멘을 찾아 투우에 초대하고, 미카엘라는 돈 호세를 만나 어머니의 위독을 알리고 돈 호세와 함께 떠나게 된다. 미카엘라의 신에게 비는 아리아 ‘이젠 두렵지 않아’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4막은 투우장 앞의 광장. 스페인들의 축제이다. 행진들이 줄을 잇고 카르멘과 에스카미요는 투우장을 함께 들어간다. 카르멘의 친구들은 호세가 왔다고 주의를 준다. 카르멘은 긴장하지만 돈 호세를 피하지 않는다. 더 당당히 맞선다. 돈 호세는 사랑의 말로, 참회의 말로 카르멘을 회유하지만 카르멘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며 돈 호세와 사랑의 감정이 끝났다는 것을 알린다. 카르멘은 투우사를 사랑한다고 단호히 말한다. 돈 호세는 악마야, 나하고 가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카르멘은 반지까지 던지며 같이 갈 것을 거부하고 투우장으로 간다. 돈 호세는 ㅏ르멘을 찔러 죽이고 자신이 카르멘을 죽였다고 소리친다.

오페라 < 카르멘 >은 온몸 던져 명예를 지키려 했던 돈 호세와 온 몸 던져 생존하려고 했던 여자 카르멘의 엄청난 ‘자존’이 맞부딪치는 세계임에 틀림없다. 비록 하급 군인과 창녀에 가까운 밑바닥 여인의 이야기일지라도 장엄한 비극으로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오페라 < 카르멘 >은 질투에 눈이 어두워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밖에 없는 돈 호세와 자유롭게 사는 카르멘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손에 죽은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게 된다.

하자리안 가브리엘라는 카르멘의 메조 소프라노 보다 더 저음을 가지고 있다. 이상한 매력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하자리안 가브리엘라는 큰 키와 이국적인 매력과 선이 굵은 선을 가지고 연기를 했다. 오페라 가수들의 조금은 무표정한 연기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그녀는 카르멘을 온 몸으로 연기하고 있었으며 마지막까지 카르멘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오페라 < 카르멘 >은 가사들을 하나 하나 짚어보면 그 안에 인간 세상의 철학들이 모두 들어 있다. 그래서인지 카르멘과 돈 호세에게서 많은 인생을 공부하게 된다. 돈 호세에 비올렉 사프라칸과 투우사에 플롭 마틴, 미카엘라에 세레나 폴로라, 카르멘의 친구 프라스키타에 다니엘라 트리그, 친구 메르세데스에 크리스티나 다미앵의 가창력과 연기도 박수 받을 만 하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오페라 무대가 될 것이다.

---------------------

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 플레이DB www.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