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연극보다는 뮤지컬을 볼 기회가 더 많아서
연극은 정말 오랜만에 봤네요..

신종플루다 뭐다 해서 밀폐된 소극장 연극은 보지 말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굳이 고집을 부려 갔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왠지 인간 소외, 외로움 같은 데에 초점을 두었을 것 같아서)
무엇보다도 직업병 때문에..ㅋㅋ

제가 전공이 국어 쪽이다 보니 맞춤법이 자주 거슬리곤 합니다.
그런데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때 가끔 '할께' '그럴께' 등등
맞춤법을 틀리게 해서 제목을 내거는 경우도 많거든요..
하지만 여기서는 '드릴게'로 적어 줘서
그 이유 하나 만으로 좋다고 갔더랍니다.ㅋㅋ

역시 소극장의 매력은 배우들의 몸짓, 눈빛 하나하나가 자세히 보인다는 거죠.
연기력이 없는 배우들이 나오면 금방 몰입도가 떨어지는 반면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나오면 2시간이 금방 지나가게 된다는..

흠.. 저번에 모 아이돌그룹 리더가 인기 하나로 주연이 되어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을 보고 나서
본 연극이라 그런 진 몰라도 배우 분들의 연기력이 장난이 아니시더라구요

특히 할머니 역할을 맡으셨던 배우분은 아예 삭발 투혼.. (세중사를 떠올리게 하는..)
은혜 역할을 맡으셨던 배우분은 눈이 빨개지도록 눈물을 흘리시고..
슈퍼할머니 역할을 맡으셨던 배우분은 어쩜 그렇게 구부정한 할머니 걸음걸이를 잘 하시는지..
슈퍼집 손녀 역할을 맡으셨던 배우분은 슈퍼할머니 흉내를 너무 똑같이 해서 섬뜩할 지경..
남자 배우 분들도 다 잘 하셨지만 유달리 여자 배우 분들의 연기가 눈에 띄게 들어오더군요.

제가 앞자리에 앉아 있어서 소품들도 유심히 볼 수 있었는데
슈퍼에 있는 과자들.. 진짜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먼지가 잔뜩 끼여 있더라구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어찌나 신경을 쓰셨는지.

시나리오도 상당히 작품성이 높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상황들이 본인 입에서 설명하듯이 나오는 게 아니라
인물들 간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힌트들이 흘러나오더군요.
끝나고 나서도 함께 본 친구와 계속 연극 얘길 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은혜는 죽은 걸까, 새롭게 시작을 한 걸까.
용이와 슈퍼집손녀는 어떻게 될까 등등..
이럴 땐 좋았다, 저럴 땐 나빴다 등등..

다만,

★★★★☆ 별이 4개 반인 이유는,

공연소감에도 적었습니다만
2번 나오는 담배씬.. 정말 몰입도를 현저하게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제가 좀 지독한 비흡연자라서 담배 연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도 연극에서 꼭 필요한 거니까 참았습니다만
기관지 쪽이 나쁜 분들은 기침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담배 연기가 앞자리에 앉은 제게 직빵으로 오더군요.
담배씬은 제발 다른 걸로 대체해주셨으면 합니다.
(배우 분들도 제 표정을 보셨는지 얼른 치워주시긴 하셔서 감사했습니다만..)

아무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연기를 봐서 덕분에 눈이 즐거웠어요.
끝나고 왠지 모를 우울함에 이제야 후기를 남깁니다.
또 보러 가고 싶네요. 다시 보면 또 다르게 보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