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모이면 비정상도 정상

공사장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 인간은 진짜 인간일까

지난 주말에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연극 <에라 모르겠다>를 관람했다.
극단 이야기가 제작, 최재성 작/연출이고 공연시간은 85분이다.
부현 역 조부현, 김반장 역 김충근, 사장 역 최명경, 이반장 역 이후성,
사내 역 안상완, 민주임 역 민신혜, 박대리 역 조진호, 대학생 역 고건영 배우가 출연했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공사현장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끔 사실적으로 무대가 꾸며져 있다.
무대의 삼면을 가로막은 비계(飛階. 높은 곳의 공사를 하기 위한 발판 역할을 하는 임시가설물)의 벽에서 느껴지는
삭막하면서도 무미건조한 느낌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견고한 현실세계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인공 부현은 공사판에서 처음 일을 해보는 신출내기다.
공사장의 인부들은 경력이 오래됐듯 신입이든 서로를 반장이라고 부른다.
서로를 동등한 직책으로 부르니 평등한 계급사회처럼 비추어질 수도 있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경력이 오래되어 알아서 일을 척척 해낼 수 있는 프로와
부현처럼 지시를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풋내기가 동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다루는 주된 사건은 6미터 높이에서 인부가 추락한 사고다.
부현은 당장 119에 신고해서 추락한 인부를 응급실로 옮겨야 한다고 외쳤지만
주인공 이외의 인부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등장하는 건설사 사장은 어떻게 사상자를 이대로 방치해 놓았냐며 호통을 치지만
그 역시도 아무런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단람주점에 가서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여러 선배 인부들의 지시가 달라서 공사장에서 부현이 우왕좌왕할 때 산울림의 <나 어떡해>가 흘러나온다.
건설현장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는 노래였다.
추락한 인부가 이미 죽었을 거라며 누구도 손을 쓰려고 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한 부현은
손수레에 환자를 태우고 혼자서라도 인정이 없는 이곳을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수레는 공사장 안을 맴돌 뿐이었다.

연극의 결말부에서야 등장하는 대학생의 당돌한 태도는 반전과도 같은 깨는 느낌을 주었다.
고참 인부의 윽박에 주눅이 들었던 부현과는 달리 대학생은 당당하게 되받아쳤기 때문이다.
삶이 편해지는 처세술을 터득한 듯 보이는 대학생의 모습과
공사장의 지박령이 되어 영원히 이곳을 떠돌 주인공의 서글픈 모습이 오버랩된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배웁니다. 착하고 바르게 살라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119를 불러서 신고를 하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 상황이 도와줄 수 있는 경우이면 도와주고 길 잃은 아이를 만나면 보호하면서 경찰에 인도해 주라고 말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그렇게 사는게 착하게 사는 것이고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그렇게 사는 걸 바보같이 산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도움을 청해서 도와주면 오히려 가해자로 몰릴 수 있으니 외면하고 아이를 만나서 보호하고 경찰에 인도해 주면 오히려 납치범으로 몰려 아이에게 어떤 가해를 했는지 피의자로 몰릴 수 있으니 조심하고 도움을 청하는, 혹은 구걸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기꾼이니까 호구처럼 굴지 말고 지나치라고 말입니다. 학교에서는 12년동안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연극 에라 모르겠다에서 조부현은 그렇게 학교에서 막 졸업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니고 어영부영 공부하다가 이런저런 직장도 잡지 못하고 그러다가 건설일용직으로 처음 현장에 들어온 일용직 근로자 말입니다. 어리바리로 눈치도 없고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자기 의견을 내놓고 조율할지도 모르는 막내 말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알았어요 가 전부일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알았어요 말고 다른 할 말이 생겨 버렸습니다. 웬만하면 모르척 하고 하라는 대로 하겠는데 말입니다. 12년 동안 배운 게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에 “그래도 그건 아니죠” 라고 말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른 건설일용근로자 한 명이 눈 앞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현에게는 당연히 이 사람을 빨리 옮겨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사람을 빨리 옮기는 건 절대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살아나는 건 회사의 지침, 내 사생활, 내일 다시 출근하는 직업의 연속성 뒤에 있습니다. 부현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사람들에게 부정당하는 동안 다른 작업 인부들 중에는 망설이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망설임은 망설임으로 끝나고 직업에 대한 위협으로 돌아올 것 같자 표정과 말을 바꾸고 정해진 지침에 따라 떨어진 근로자를 이쪽으로 옮기고 저쪽으로 옮겨가며 사건을 숨기려고만 합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 연극은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치겠네” 라고 말하는 부현의 목소리에는 “미친 세상”에 반대함으로 오히려 미친놈 소리를 듣게되는 현실에 대한 충격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부현은 아마도 그 순간 자기가 다른 세계에 온 것과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무대를 바라보는 나는 그 희극적인 상황에서 한참을 웃다가 말고 갑자기 고구마 100개를 한꺼번에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맞습니다. 나도 떨어지면 그렇게 방치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떨어진 근로자의 뒤처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장이 되어서 경제적 실리를 위해서 “덮어”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자신만큼은 아직 있지만, 10년, 20년이 지나서도 그럴 수 있을 거란 자신을 할 수 있도록 세상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요즘 세상에서 많이 봐오면서 이 연극에 공감을 하나 던집니다. 이렇게 적나라하고 희극적으로 보여준 현실의 단편을 통해 한번쯤은 더 경각심을 갖고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하지만 조금쯤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불러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의 열연과 현실감이 즐거웠던 연극, 에라 모르겠다 는 나에게 그런 연극이었습니다.

무대를 들어서는 순간 무대를 디귿자 형태로 가득 메운 비계를 맞이하게 된다. 비계는 공사현장에서 통로 또는 작업공간으로 사용되는 가설치물을 총칭한다. 비계는 건설현장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설치물 중 하나이다. 비계에는 선명하고 큰 글씨로 적혀있는 ''안전제일''이라는 표시가 상징적으로 붙어 있다.

건설현장에는 항상 크고 작은 인재(人災)와 여러 재해(災害)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러하기에 작업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때로는 사고로 사람의 목숨도 거두어가기 때문이다.

작업이 시작되면서 건설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무대를 가득 메우며 관객들을 현장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콘크리트와 철근 등등 무거운 자재를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진행하는 일의 특성상 건설현장에서는 힘든 일들이 많다.

배우들은 건설현장에서 처음 작업하는 사람들의 경직되어 있는 긴장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높은 곳에서 작업하던 인부가 아래로 떨어져 생사여부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상하게 현장을 정리하며 아무일 없다는듯 행동하고 있지만...

이러한 사고를 접한 다양한 인간군상들은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비인간적이고 원초적으로 건설현장을 지키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행태들을 보며 혼돈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부현''은 추락한 사내가 외치는 ''출구가 어디냐''는 말에 지금 있는 현장을 빠져 나가려 발버둥 친다.

아우성 치는 소리, 자신의 이야기만을 외치는 소리, 스멀스멀 다가오는 이기적인 탐욕,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무관심, 인간 보편적인 도덕의 무너짐 등등 다양한 입장과 생각 그리고 행동들이 부딪치며 관객들에게 묻고 있다. 마치 출구 없는 시스템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갈 것인지, 자신의 또다른 출구를 찾아 떠나는게 맞는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생각하는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행동하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귓가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