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극장을 나오게 했던 의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1막은 주방에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따라가느라 힘들었는데,
작품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2막에 있더군요. ^^;;
사람이 먹고 사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다시 깨닫게 해 준 작품이라서 좋았어요.
배우분들의 열연에 박수를 보냅니다!! ^^

엄청난 무대와 배우들에 압도되어 버린 작품...

혼잡한 주방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불협화음을 자아내는 장면 하나.
맛있는 요리를 경쟁하듯 내놓는 요리사들의 경합과 관련된 장면 하나.
보통 요리사와 식당에 관한 내용을 극화한다면, 위의 장면들을 떠올리기 쉽다.
나 역시 요리사들의 우정과 사랑, 갈등과 화해, 이런 도식적인 장면들을 연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예매를 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삭막해 보이기까지 하는 회색 식당과 그 속에 오밀조밀 모여 앉은 식당 사람들.
그리고 첫 장면부터 갈등과 싸움을 예고하는 듯한 대사.
뭔가 참 세고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없이 자신이 맡은 요리에 몰두하고, 숨 쉬는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은 공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듯하지만 기실 알고 보면 자신의 영역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
기절하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많이 주니까 괜찮다는 사장의 뉘앙스.

어찌나 현실과 맞닿아 있던지 놀랄 지경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식당 안이 꼭 우리의 삶의 터전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회사 안에 들어가고 나면 숨쉴 자유조차 없이 업무에 옥죄이는 우리네 찌든 삶.
그 삶의 축소판이 바로 그 식당 안에 있었다.

그 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전쟁같이 정신없고 소란하던 1막을 지나 조금 여유로워진 휴식의 시간을 그린 2막.
그 2막에서 피터는 묻는다.
꿈이 뭐냐고…
그리고 자신만의 성을 올린다.
마음 속 자유를 내보일 수 있는 본인만의 성을…
하지만 과연 그 성이 자유롭기만 할까?
유부녀 애인과의 몰래만남에 지쳐가는 그에게 꿈을 다시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여유로워지고 싶고, 잠을 실컷 자고 싶고…
다소 뻔하고 단순한 답들이지만 그게 팩트다.
우리에게, 그들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대의가 아닌 현실적이고 소소한 자유다.
그런 자유가 과연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일까?

결국 모든 것이 파괴되고 허물어지는 결말 속에서도 그 꿈의 의미는 머물러 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숨 한 번 쉬어 보고 싶다고…
그런 피터의 절규가 그 공간 안에 오롯이 남아 있다.
그래서 쉬이 그 식당 안을 떠날 수 없다.
그 전쟁 뒤 남겨진 페허에서 발을 뗄 수가 없다.
연극은 끝났고, 배우는 무대를 떠났고, 막은 내렸지만…
극장을 떠나는 내게, 관객들에게 그들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꿈이 뭐지?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별로 안 좋아함에도 챙겨볼 정도로 음식이나 패션 관련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하던 일 잘 안 되면 ‘다 때려치우고 식당이나 차리지 뭐~’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프로그램이 고든 램지가 진행하는 쇼죠. 소음 수준의 고함에 욕은 일상이고 주방에서 쫓겨나기 일쑤인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쑤욱~ 들어가실 걸요. 명동예술극장에서도 주방의 난리법석이 벌어지고 있으니~ 연극 <키친>입니다.

규모도 크고 유명한 식당의 평온하고 조용한 주방 풍경으로 공연은 시작됩니다. 그러한 평화는 오븐에 불이 올라오고 직원들이 속속 출근하면서 깨지죠.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성격, 다양한 연령대가 근무하는 통에 하루도 조용할 일 없이 사사건건 난리법석입니다. 누구는 새로운 시작에 서서 걱정하고, 누구는 옳지 않은 사랑에 괴로워하고, 누구는 무사안일에 최우선을 두고, 누구는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절대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고, 또 누구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죠.

즐겁고 편안하게 음식을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다면 최고겠지만~ 이런 대형식당은 군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조직적입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주문은 순식간에 엉키고 주의집중력이 흐트러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주방이라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1막 후반엔 저게 주방인지 전쟁터인지 모를 모습이 펼쳐집니다. 생판 모르는 남이 모여서 조율하는 것도 스트레스 받을 일인데~ 이런 긴장 속에서 일을 하려니 그들이 신경질적인 건 당연한 일이에요.

‘2차 대전 이후 영국의 식당에서 일하는 다양한 민족의 인물들’이라는 특색은 우리나라의 무대에서 확연히 드러내기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은 흘렀으나 아직 전쟁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그들 사이에 신경전은 한층 더 가열될 수밖에 없는데 그걸 느끼기엔 시대적, 공간적 갭이 있으니까요. 캐릭터의 개성과 배우들의 연기가 많이 보완하기는 했어도 2막 막바지의 파국에 이르러서는 정확히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 건지 모호했습니다. 좀 더 오늘의 시각에서 조명했다면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진짜로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를 하는 건 아니지만 각자 파트에 맞는 동작을 보여주고, 다수의 홀 직원들까지 합세하면서 바쁜 식당의 현장감을 제대로 살리고 있었습니다. 조리 과정과 동선 익히랴~ 배역에 맞는 외국어 익히랴~ 배우들의 고생이 여러모로 많았겠더군요. 무대 세트가 더 주방스러웠다면 좋았을 거 같고 극의 긴장감이 중간에 흐트러지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어요. ^^

그 작은 주방에서의 희노애락은 우리내 삶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연극을 보면서 세삼 깨달았다. 사랑하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꿈꾸고 좌절하고 열망하며 일하고 바쁘고 미워하고 싸우는 모습은 세상 어디에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주방이라는 배경을 통해 투영해본 모습은 흡사 전쟁터의 모습과 다를바 없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너의 꿈은 무엇이니? 하고 물으며 자기만의 성을 쌓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원하는게 뭐야 라는 마지막 사장의 말도 네가 말하고 남이 말하는 것을 스스로의 관점에서만 이해하지 말고 너 스스로를 그리고 남을 이해하며 사랑하라는 외침처럼 들려 조금은 반성도 했다.

웃고 즐기는 연극으로만 끝나는게 아니라 삶의 방향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