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만 해도 로맨틱코미디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최근 몇 년 전부터 참신한 소재의 스토리와 음악적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흥행에도 성공하며 소극장 뮤지컬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뮤지컬 ‘빨래’ 나 ‘스페셜 레터’, ‘식구를 찾아서’ 그리고 ‘여신님이 보고 계셔’등의 작품이 로맨틱코미디에서 벗어나 특이 집단이나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뒤를 이어 신라 시대 남자 기생의 애달픈 사랑과 운명을 그린 뮤지컬 ‘풍월주’도 그 한 예다.

이러한 붐업을 일으킨 계기 중 하나는 국공립이나 사설 단체에서 시작해 계속되고 있는 창작 활성화 방안으로 마련된 창작 지원제도의 영향이 크다. 뮤지컬 ‘풍월주’는 그중 하나인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를 통해 2011년 리딩 공연을 시작으로 2012년 대학로 컬쳐스페이스 엔유, 2013년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됐다. 많은 이들이 운루에서의 남자 기생들의 운명과 사랑에 동참하며 가슴앓이를 하곤 했다.

뮤지컬 ‘풍월주’는 소재가 그러하듯 유추할 수 있는 상상적 이야기들이 무대에 녹아난다. ‘열’은 당시 여왕의 마음마저 빼앗은 바람과 달의 주인이던 풍월들의 으뜸이다. ‘사담’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열’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왔다. 이들은 어느새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알아채는 사이가 되어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함께하길 원하며 영원까지 지켜주길 약속하던, 사랑보다 더한 운명으로 다가온 연인 이상의 연인이다. 그리고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지만 ‘열’의 마음만은 가질 수 없어서 모든 직위와 명예를 버릴 것처럼 초조한 사랑의 안달에 체통도 벗어버린 채 보통 여자로 분한 “진성여왕”. 뮤지컬 ‘풍월주’는 이들이 중심을 잡고, 신분 높은 귀부인들만 모시던 남자 기생의 풍월들이 모인 은밀하고 특별한 회랑인 ‘운루’를 중심으로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2013년 11월에 시작해 해를 넘기며 가슴을 적시는 아련한 잔향을 남기며 2014년 2월 막을 내렸다.

이번 공연에서도 가슴 시린 애달픈 사랑과 정서는 그대로 유지되고 서정적인 음악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작품이 마지막으로 치닫질 못하고 에필로그가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드라마의 흐름이 다소 루즈했다. 같은 패턴의 음악적 구성이 상황에 맞게 떨어진 구조적인 입체감으로 느껴진다기보다 언뜻 비어있고 단조로웠다. 공간과 규모가 달라짐에 따라 무대가 달라졌겠지만, 전체적으로 비어있고 헐렁한 기운이 강했다.

작품은 한 장면 한 장면 보기엔 나쁘지 않았으나 무대가 채워지지 않고 여백이 아닌 빈 구석이 많게 느껴졌다. 블루와 바이올렛의 빛이 주는 이미지는 각인되었지만 전체적인 무대 미장센의 합이 잘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콘텐츠의 그릇인 극장의 크기를 늘리지 말고 아담한 사이즈의 소극장 무대에서 상징적이며 시적인 무대를 유지하여 조금은 특별한 판타지로 풀어내는 것이 더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소극장용 콘텐츠를 무리하게 큰 극장에서 공연하여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은 공연들의 전철을 밟지 말았으면 한다.

작품은 매혹적인 배우들의 열연으로 아주 특별하고 따스한 온기를 지킬 수 있었다. ‘열’ 역의 정상윤은 운루의 제일가는 남자 기생으로 분해 우월한 외모뿐 아니라 안정적인 연기와 가창으로 한껏 매력을 발산했다. ‘사담’ 역의 배두훈은 따뜻한 감성의 보이스와 애절한 눈빛이 가슴에 남아있게 했다. 늘 적정선을 유지하며 자신의 감정을 애써 추스르며, 언제나 냉철하게 다스리는듯한 ‘운장’역의 “임현수”, 그리고 여왕의 품위에 맞는 카리스마로 무장한듯 하지만 순간 여자로서 여린 순정의 호흡을 눈빛에 담아 토해 내는듯한 ‘진성여왕’ 역의 전혜선이 있어 밀고 당기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뮤지컬 ‘풍월주’는 언제 앙코르로 공연될지 모르겠다. 가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던 세 남녀의 파랗게 멍이든 보랏빛 러브스토리가 소슬바람이 불 때쯤 다시 기억될 것 같다.

유희성 he2sung@hanmail.net

사진_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