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가>에 이은 제4회 예그린앙코르 본선 진출작 두 번째 작품은 <레드 슈즈>다. 2013년 CJ크리에이티브 마인즈 공모전에서 선정돼 이후 수정 및 보완단계를 밟은 이 뮤지컬은 오는 21일 관객들을 만난다.

지난 12일 저녁, <레드 슈즈> 연습실에 들어서자 어딘지 고풍스러운 빨간 원피스와 기모노, 중절모 등으로 단장한 배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공연용 의상을 입고 촬영을 진행했다는 이들은 곧 다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연습을 시작했다.

잠시 엿본 의상이 말해주듯, <레드 슈즈>는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극작/작사를 한 김채린 작가는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작품을 썼다. 한번 신으면 벗을 수 없는 빨간 구두를 신고 끝없이 춤을 추는 동화의 주인공처럼, 이 뮤지컬의 주인공들은 수많은 정치이념과 예술사조가 난립했던 시대에서 제각기 일그러진 욕망과 이상이라는 구두를 신고 파멸을 향해 치닫는다.


이날 연습은 이제 갓 무용단원이 된 자경(박지연)이 조선총독부 부장 마모루(이주광)를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됐다. 성공을 꿈꾸는 자경은 무용단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마모루와 무용단 최고의 인기스타 혜인(이은율)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그 선망의 마음은 점차 갈등과 질투로 변한다.

그러나 마모루와 혜인에게는 자경이 모르는 그늘이 있이 있다. 순수 예술을 꿈꾸며 현대무용으로 최고의 스타가 된 혜인은 자신의 춤과 공연이 일제의 정치선전으로 이용된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하고, 적극적인 친일 행보로 높은 지위에 오른 마모루는 비천한 신분 때문에 멸시당했던 과거의 상처를 품고 있다.


이야기의 갈등구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드는 인물은 승준(김찬호)이다. 승준은 지난해 진행된 리딩공연 후 새로 추가된 인물로, 마모루의 옛 절친이자 친일 요인들을 제거하는 암살단원이다. 그는 마모루에게 친일행적에 대한 죄책감과 암살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고, 혜인에게는 일제의 꼭두각시가 된 처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혜인이 모자를 벗는 순간 연주를 시작해주세요.” “거기선 좀 더 천천히 가주세요.” 배우들은 김규종 연출의 지휘 아래 각 장면 별 동선과 호흡을 세심히 점검했다. 이미 배역 속에 푹 빠져든 듯 질투와 선망, 불안감이 교차하는 박지연의 눈빛과 우아하면서도 깊은 고민이 엿보이는 이은율의 모습, 암살작전을 논의하는 장면에서 김찬호 등이 주고받는 긴박한 호흡 등이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최근 몇 년 새 <사의 찬미><콩칠팔 새삼륙> 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창작뮤지컬이 관객들을 만난 바 있다. 새로운 문물과 사조가 끊임없이 몰려오던 격변의 시대,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을 중심으로 펼쳐질 또 한 편의 창작뮤지컬이 어떤 무대로 만들어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예술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일제시대만큼 적당한 시대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여러 갈등의 지점들이 더 또렷하게 보일 것 같았고, 훨씬 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김채린 작가는 “일제시대를 얘기할 때 보통 떠올리는 전형적인 시대상에서 벗어나 좀 더 큰 시각으로 당대를 그려보고자 노력했다. 단순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벗어나 거대한 수레바퀴 안에서 몰락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김채린 작가와 류찬 작곡가
음악을 만든 류찬 작곡가 역시 “일제시대를 핍박당한 시대라고들 많이 생각하지만, 그 시대는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더니즘 등 굉장히 급진적이고 세련된 예술사조가 표현된 시대이기도 하다. 암울한 시대상과 다양한 계급의 인간들을 세련되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여주인공들이 무용수인만큼, 극중 안무와 음악이 어떻게 어울릴지도 또 다른 기대포인트다. 리딩공연 때 보여주지 못한 안무 장면을 풍성하게 선보이기 위해 그에 맞는 음악도 보강했다는 류찬 작곡가는 “기본적으로 클래식한 문법을 따르되 거기에 다양한 색깔을 입힐 것.”이라고 전했다.

<레드 슈즈>는 오는 21일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쇼케이스 무대에 올라 <아랑가><나는 조선의 아이돌이다>와 경합을 벌인다. 세 편 중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뮤지컬에는 문화예술진흥기금 1억 원과 충무아트홀 극장 대관 기회가 주어진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