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은 적 없고 별 관심도 없었는데
우연히 이벤트에 당첨 되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대충 공연정보에 나와있는 줄거리만 읽고 갔는데
대박！！！
공연 정보에 있던 "관객들의 감각적 체험"이 무엇인지 여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평생 달리며 살아온 윌리를,
왠지 긴장하게 만드는 음악과 함께 정말 한시간 내내 런닝머신에서 뛰는 것으로 연출한 것.
비오듯 땀을 흘리며 웃는듯 우는듯한 표정으로
조금도 숨찬 기색없이 대사를 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 힘들게 달려온 여생을 내 눈앞에서 직접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강한 심리적 압박과 직접적인 감각적 체험이 동시에 일어나더군요.
한발엔 운동화, 한발엔 구두가 쉴새없이 달리며 교차되는 시각적 효과.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니까요ㅠㅠ
그 중에도 윌리를 맡으셨던 그 인상 좋으신 아저씨.
진정 연기대상 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 이렇게 연기를 잘하시는 분들이 무대에 있어도
상이란건 공중파에서 인기있는 연예인들이 받겠지란 생각이 드니..
극단 분들이 또 다른 윌리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상이 중요한 건 아니고, 열심히 달린다는 것 빼고는 공통점이 없을테니..
말도 안되는 잠깐의 비교였네요ㅎㅎ
후기가 잠깐 옆으로 샜어요ㅋ
어쨌든 그 외, 어떻게 이렇게 기발하고 재치있게 연출을 했을까 싶을정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연출들에 즐거웠고,
마지막에 나오던 윌리의 휘파람 노래-camptown race 맞죠?-랑
인생은 아름다워 노래는...그 역설적인 표현에 또 한번 "와~"소리를 내게 했습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점은...
무대와 객석의 높이가 같아서 바닥에서 진행되는 내용들은 보기가 힘들었다는 것.
대학로라면 이 훌륭한 연극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기회가 있을텐데 하는 것들이 좀 아쉬웠어요.

연극이나 뮤지컬을 많이 보는 편인데
정말 별 다섯개를 아낌없이 주고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연극 기대할게요. 좋은 연극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북동 비둘기.

세일즈 맨의 죽음.
뭐, 유명한 고전이기는 하지만. 읽어본 작품은 아니다.
원래 어두운 현실을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대충의 줄거리는 아는 작품이었다.

영화로도 꽤 유명했던걸로 기억하는데..영화를 찾아서 봐야할까..

여튼, 성북동 비둘기에서 만난 세일즈맨의 죽음은..
좀 가슴아팠다.

주인공인 윌리 로만, 그의 아들들, 그리고 아내.

런닝머신위를 달리고 있는 윌리.

그리고 그의 주위를 쉴새없이 돌아다니는 가족들.. 사람들..

배우들의 극 몰입도는 좋았다. 그리고 성북동 비둘기의 차가운 분위기 또한 극에 한몫했다고 본다.

하지만 대사 전달력이 부족해서(아마도 마이크나, 울림 문제일지도) 알아듣지 못한 대사가 1/4 정도 되었다는게 좀 문제다

가장의 무게.
성공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윌리.
아들들에게만은 최고가 되고 싶었던 한 남자.
그리고, 마지막.

모든것이 어긋나 버리고, 모든것이 끝난 지금.

이 집에 남은 것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역할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연극이 끝날무렵.. 갑자기 흐른 눈물에 내가 나한테 당황해버렸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윌리 로만 역을 맡은 배우분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시간동안 런닝머신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도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셨고. 그의 눈빛이나 허망한 손짓들이 나를 움직이게 했으니까.

하지만 공감하기는 힘들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들의 세일즈나, 미식축구나 ... 조금은 우리의 정서와 비슷한 부분으로 각색되면 좀 공감하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

지하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 그리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연극.
오랫만에 정말 소극장 다운 소극장에 온 기분이었다.

아서 밀러의 원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 동안 우리에게 -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저조차도 왠지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슬프고 비참한 최후였다고 여길 만큼 - 어느 세일즈맨의 비극적 최후를 애도하는 슬픈 송가처럼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련한' 세일즈맨의 삶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가부장적 권위를 중심으로 구성된 부계사회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주변 가족들에게 위협적인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치명적입니다. '아버지'란 존재는 그 사회가 규정한 역할과 의무에 구속되어 일말에 의심의 여지조차 없는 희생과 헌신을 강요받아 왔지만, 가부장적 질서가 붕괴·해체되는 시점에 이르러 더이상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그 노력에 부응하는 감동과 감사, 권위의 존중이 뒤따르지 않게 된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아버지의 쓸쓸하고 왜소해진 뒷모습이 강조된 세상이 온 것이지요. (세기말, 새천년 초입에 닥친 외환위기 무렵 쏟아져나온 '아버지' 시리즈의 열풍을 떠올려보세요.) 어쩌면 우린 동정과 연민으로 포장된 - '무너진 가부장의 뒷모습'이라는 - 또다른 가부장적 질서를 강요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질서가 악이고 잘못된 것이라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제가 볼 때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거시적 측면·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본 가부장 질서에 대한 논의의 장이 아닙니다. 무대 '.일상지하'에서 보여진 세일즈맨의 죽음은 바로 일상 속 우리 가족의 단면이고 그 안에 담겨진 진실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젼혀 몰랐던, 상상조차 못했던 생뚱맞은 그런 게 아니라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겁니다.



부모와 자식은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서로 상대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족이란 이유로 말이지요. 분명 선의를 기초로 한 행동이고, 좋은 결과를 바라고 하는 일들입니다. 근데 우린 가족을 통해 늘 언제나 진정한 행복을 맛보았나요? 모두가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하긴 어려울 겁니다. 때로는 가족으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고, 가족의 그 선한 의도와 행동 때문에 최악의 결과에 처하기도 하는 게 바로 우리가 살아온 가족이란 관계의 한 단면임을 모르지 않으니까요.



선의가 반드시 선행을 낳지는 않습니다. 상대를 위한다고 한 행동이 꼭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선의와 선행이 독이 되어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지요. 때때로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들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는 겁니다.



세일즈맨의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며 피해자입니다. 알지 못했고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상대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가해와 피해의 사슬을 끊고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세일즈맨은, 그 가족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그것이 세일즈맨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부인을 대출금 완납한 텅빈 집에 홀로 남아 절규하게 만드는 파국의 원인입니다. 하지만.. 과연 누가 그들을 탓하고 욕할 수 있을까요?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신이 믿는 게 최선이라고, 그 최선이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 믿는 그 마음이 나쁘다고,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 말은 할 수 있겠지요. 멋진 척 쿨하게 말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말처럼 사는 건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우리가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을테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일즈맨의, 그 아내의, 그 자식들이 자기 자신과 서로에게 갖는 욕심과 기대가 더더욱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저 한 템포 쉬어가라, 여유있게 돌아보며 살라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대출금도, 할부금도, 신용카드 대금도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것들은 아니잖습니까? 오히려 그것들은 구성원의 역할을 구속하고 강제하며 그 관계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 뿐입니다.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끌어썼던 돈 때문에 아내/어머니는 남편/아버지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올 것을 요구하고, 그에 부응하기 위해 가장은 스스로를 돌아볼 새도 없이 달리고 또 달려야 하는 모습, 정녕 그게 우리가 원하던 가족의 삶이고 모습일까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린 언제까지나 누군가를 탓하며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 원망이 부당하다 하소연할 수밖에 없겠지요. 모두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상대방을 잘못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상황 속에선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그득합니다. 그 아우성이 정답일 수 없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남을 보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들여다봐야 할 겁니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지켜보며 슬픔에 젖어 스스로 억제못할 감정에 빠지기에 앞서 그 같은 비극의 진정한 배후와 원흉을 짚어봐야 할 겁니다.



제가 볼 때 세일즈맨의 죽음은 '가족의 비극'이고, 이 시대 모든 가족들이 유념해야할 위기입니다. 자신이 믿는 최선에 앞서 모두가 함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그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던지는 화두는 바로 그게 아닐까요?



point.
주인공 윌리 로만은 쉴새 없이 뛴다. 무대에 설치된 러닝머신 위를 정말 부단히 뛰고 또 뛴다. 이러한 설치와 구성은 내게 이 작품의 핵심적인 상징으로 다가온다. 솔직히 이 하나만으로도 모든 게 다 표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이는 비단 로만 家의 가장이자 남편, 아버지로서 자신이 믿는 바를 향해 내달리고 모든 것을 불사르는 모습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그것은 파국과 공멸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나아가는 가족 모두의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그들 모두 진정한 문제를 깨닫지 못한 채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쓰러져버릴 것을 암시하는 장치다. 주제와 상징, 내러티브, 암시 등 작품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다 담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로서 가장 최적의 무대·장치를 구현해냈다.

이처럼 주제-내러티브-장치를 하나의 상징으로 완벽하게 엮어 조화시킨 것을 관객 입장에서 느낄 수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특정 부분이 마음에 들거나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처럼 딱 들어맞는 조합을, 누가 설명해주지도 않았는데 인식할 수 있는 건 나로선 극히 드문 일이고 그만큼 깊은 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