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본 백 수십 편의 연극 중에서 최고로 꼽는 작품은 역시 ''뼈의 노래''이다. ''뼈의 노래''를 올렸던 낭만유랑단이, ''뼈의 노래''를 쓴 히가시 겐지의 다른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고 하니 이 어찌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예매해버렸다.

일본 작품을 그대로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일본인을 등장인물로 하여 무대에 올렸던 ''뼈의 노래''와는 달리, 이번에는 배경이나 인물 등을 모두 한국으로 재설정하였다. 즉 번안 작품에 더 가까운 셈이다. 그러나 배경과 인물의 이름은 모두 한국적 상황으로 바뀌었지만, 대사나 인물들의 행동,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에서 나타나는 분위기 같은 것은 여전히 일본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거나, 이 작품에서 말하는 ''미래의 한국''에서라도 일어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사죄할 때 무릎을 꿇으며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하는 행동1이나 집안에 작게 모셔져있는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한 제단 같은 것들은 한국보다는 일본의 분위기에 더 적합하다. 방사능에 오염되어 먹을 것을 구하기도 어렵다거나, ''주둔군''으로 표현되는 외국 점령군(아마 미군)의 존재 및 그에 따른 자국의 전쟁 패배 같은 뒷배경 역시 사실은 일본의 전후 사정임을 너무 쉽게 알게 해준다. 더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근미래에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이다. 물론 연극적 상상력이라는게 있긴 하지만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닌가...
이런 차이점, 그러니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국적과 배경, 그리고 구체적인 행동과 대사를 통하여 드러나는 이 작품의 진짜 배경 사이의 차이는 이 연극에 몰입하는 것을 상당히 방해한다. 한국인으로 설정된 인물이 일본인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고, 일본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작은 사당을 차려놓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신뢰를 낮춰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그런 일을 상상하기 힘든 시대 배경과 그런 점에 대해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설명은 작품 자체에 대한 의문, ''이게 정말 가능할까. 그냥 전후 일본 이야기네''라는 것을 계속 제기하도록 한다. 마치 CG가 잔뜩 들어간 영화를 볼 때 그 효과가 너무 조악하여 ''에이 현실감 제로임''이라고 생각이 먼저 들어버리는 그런 느낌이랄까...
차라리 ''뼈의 노래''처럼 히가시 켄지의 작품을 그대로 번역만 해서 올리거나, 그게 아니라면 좀 더 한국의 현실에 맞도록 더 큰 번안이 하였다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었을 작품이었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전쟁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대길이라는 인물과 그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주변 인물들의 희망을 통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한다...고 한다. 그런데 대길이라는 주인공도 그렇고 다른 인물들도 그렇고, 희망과 긍정이라는 메세지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멍청할 정도로 착하거나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뻔뻔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아무리 결혼한지 삼일 만에 징병되어 남편이 떠나갔다지만, 따로 연모하는 남자의 어머니와 지인을 남편의 집에서 같이 산다는게 얼마나 뻔뻔한 일인가 말이다. 물론 남편이 죽었다는 통지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그가 살아 돌아오고나서도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는 것도 없이 그 집에서 그냥 ''삐대고'' 있는 모습은 영 불편했다. 그런 여자를 제대로 쫓아내지도 못 하고 적절하게 대응하지도 않는 대길 역시 착하다기보다는 그냥 바보 같은 놈일 뿐이다. 애초에 인물상이 이렇게 비춰졌으니 작품 후반부에 그들이 좋은 결실을 맺는 것 같은 분위기로 가더라도, 부부의 화해라기보다는 뻔뻔한 여자와 멍청한 남자의 불행한 결합이라는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가장 짜증나는 인물이었던 연모남의 어머니, 그 집에 살기에 가장 적당하지 않은 인물이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하는 사람인데도 대길에도 가장 당당하고 뻔뻔하게 행동한다. 물론 아내에게 그렇듯 대길이 바보 같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런 그 여자의 행동은 ''대길을 이용해먹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 이 작품에서 ''희망''의 형태로 나타나는게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운 좋은 남자'' 대길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이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것인데, 그 머리카락을 파는데 앞장서는 사람이 연모남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대길을 이용해먹는 그녀의 행동을 통하여 소원을 이루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기란 쉽지 않다. 특히 속옷을 바깥에 덧입은 이 여자의 외관은 더더욱 불쾌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찌질한 인물들의 향연 속에서 연모남 어머니의 지인으로 집에 들어온 여자의 존재가 그나마 괜찮았다. 거리의 여자에서 뛰쳐나와 대길과의 관계를 통하여 평범한 삶을 되찾으려 하는 그 여자야말로 대길로부터 행운과 희망을 얻는 모습이었다. 다만 그녀 혼자서는 이 작품의 전체에 ''희망''이나 ''행운''이라는 메세지를 불어넣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많은 점이 아쉽기도 한 작품이었다.
좀 더 완벽한 번안이었다면, 아니면 켄지의 작품 그대로를 올린 무대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중에 그런 무대가 한 번이라도 더 오려나...

* 기록...
어머니 - 장은진, 부인 - 정나윤, 여자 - 염선화, 대길 - 이하림.
대본 - 히가시 켄지, 연출 - 송경화, 극단 - 낭만유랑단.

처음엔 조금 괴상하다구 느꼈는데 ㅎㅎㅎㅎㅎ
다 보고나니.. 정말 힘이 불끈 솟았어요ㅎ
역시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이 되는거 같아요
힘든 걸 이겨내고 희망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감할 수 있었고, 마음 한구석이 짠 ~했습니다 ㅎㅎ
재미난 퍼포먼스와 괴상한 옷들, 노래들이 ㅎㅎ유쾌한 웃음을 자아냈고
힘든데도 웃으니까 나중엔 오히려 그 웃음이 더 슬프게 느껴지더라구요.!